일하다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가 으레 그렇듯 갖은 주제를 두고 제법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누군가 내게 부모님은 뭐라고 하세요, 라고 물으니 나도 모르게 어머니는 이렇게 저렇게라고 하셨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쪽이 굳이 아버지는요, 라고 묻길래 나는 또 이상한 심술이 생겨 계셨으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네요, 라고 대답하니 흐르는 익숙한 잠깐의 어색한 공기. 속되게도 그 사실이 날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냥 우쭐해지던 것도, 어쩔 줄 몰라하는 저들이 얄미워지는 것도 없다. 다만 이제는 아버지가 없는 걸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아버지 나이 정도 먹으면 아무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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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이라는 재능.

별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유튜브를 시작한다길래 응원하면서도 은연 중 무시했다. 우연히 생각이 나 방문해보니, 몇 달이 지나도록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하며 느리지만 착실히 구독자가 늘어나고 있더랬다. 부끄러웠다. 꾸준함이라는 그 재능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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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러듯 들불처럼 타오르다 어느새 다시 관심에서 멀어진 듯한 뉴스에 대한 뒷북. 영화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의 번역을 둘러싼 논란이 상당했다. 주로 문학작품, 뉴스 기사나 칼럼, 심지어 FTA까지 다양한 방면의 오역 논란이 늘 있었지만 요즘의 오역 논란 트렌드는 영화 자막이 주도하는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 대중문화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영향이 막대하니까. 하물며 MCU 10년의 집대성이라는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영화 자막에 대한 관심과 경계심(?)도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게 쉽게 짐작 간다. 아니다 다를까, 수준 높은 한국의 영화 관객들, 그 중에서도 가장 덕력 높고 자부심 강하며 영어도 잘 하는 마블 팬들은 이 영화의 자막에 분노했다.

의사가 잘못을 저지르면 의사의 의견이 궁금해지기 마련이고 성직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해당 종교를 믿는 사람의 의견이 궁금해지기 마련. 오역 논란이 있을 때면, 그것도 이렇게 큰 이슈가 될 때면 직업 번역가라 소개하며 여전히 겸연쩍어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으레 좋은 먹잇감이 된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은 반쯤은 호기심, 반쯤은 날 난처하게 만들 생각으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러니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ice-breaking 거리로 제격이라 생각하며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러면 나는 사람에 따라 적당히 장단을 맞추며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을 하면서도 알게모르게 편을 들게 되고 옹호하는 입장이 되기도 하며 나름의 중립을 지키려 의식적으로 애쓰곤 했다. 지금 당장 떠올려보자면 본격적으로 번역을 업으로 삼은 후 내가 질문을 받을 정도로 큰 이슈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번역 논란과 이번 마블 영화 논란 정도였던 것 같다. 물론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이를테면 '번역론 논쟁'에 가까웠고 후자는 엄연한 '오역 논란'이니. 전자의 경우 누군가 묻는다면 전문가인냥 열심을 다해 대답할 수 있으나 후자는 마치 공범인냥 나도 모르게 변명을 하게 된다. 내 스스로도 영화 번역의 세계에 대한 오래된 반감과 불신이 있음에도.


하지만 내 반감과 불신은 어떤 한 개인 번역가를 향한 것이 아니다. 명백한 오역을 그것도 상습적으로 저지른 번역가의 잘못은 엄연하지만 청와대가 나서서 그 한 사람을 영화판에서 제명하고 다시는 발 못 붙이게 할 수도 없고 그게 해답이 아니라는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익숙하고도 지겨운 논쟁이다. 잘못한 개인에 대한 책임 추궁과 처벌이 중요하냐, 아니면 시스템과 구조의 개선이 중요하냐. 국가적 비극이 일어날 때 그랬고 사기업의 횡포가 드러날 때 그랬고 소위 엘리트 혹은 사회 지도층의 일탈이 폭로될 때도 그랬다. 둘 다 중요하며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거야 어느 누가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인 처벌과 시스템 개선 중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한다면 나는 후자라 생각한다. 

생각해본다. 우리는 얼마나 '잘' 분노하는지. '잘' 한다는 건 '너무 쉽게' (그리고 때론 과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옳게, 훌륭하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분노 덕에 분명 발전도 있었고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에 대한 분노는 오래 못 가기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힌 게 아닌 이상에야 그토록 오래 적개심을 품는 건 정신적 에너지 소모 차원에서 몹시 비효율적인 일이니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걸 한국인의 냄비 근성이라 욕할 일도 아니며 대중이 우매하다 혀를 찰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언론이 있고 정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때때로 이런 식의 말에 회색분자 또는 이상주의자라며 핀잔이 돌아오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다시 <어벤져스> 영화 오역 논란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그 번역가를 욕하는 무수한 댓글들과 자극적인 기사들이 부당하다 말할 수 없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시장을 자랑하는 한국 영화업계의 놀랄만큼 조악한 시스템과 구조 속에서 그런 오역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고 머리로 이해는 할 수 있을지언정 너그러히 눈감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그 지나친 비난과 지나친 분노가 가슴 아프고 걱정스럽다. 직접 관련된 건 아니지만 번역이라는 큰 집단으로 볼 때 같은 곳에 속한 사람이라 더 그렇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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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븐 스틸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봤다. 두 번째 관람이다. 먼저는 아이맥스 3D로 봤고 이번에는 4D였다. 처음이자 마지막 4D 경험이 <드래곤 길들이기2>(2014)였으니 무려 4년 만에 두 번째 4D 극장을 방문한 셈이다. 그 후로, 아니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판타지, SF, 액션 등 4D로 볼 수 있는 쟁쟁한 영화들이 있었지만 한번도 어떤 영화를 꼭 4D로  보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같은 영화를 2D로 관람했을 때와 비교해 3D 관람이 줬던 영화적 즐거움과 감동(<아바타>와 <그래비티> 등)에 비해 3D와 비교해 4D 관람이 줄 수 있는 그것이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 게 가장 큰 이유이다. 상영관과 스크린의 크기가 훨씬 작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그렇게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4D 극장을 평생 두 번째로, 그것도 이미 한 번 본 영화를 보려 찾은 것이다.

흔히 이 영화를 두고 대중문화에 바치는 헌사, 그리고 지난 수십년 간 대중문화를 향유했던 세대에, 그 시절과 지금을 사는 덕후들에게 바치는 선물이라 표현한다. 대중문화를 향한 스필버그의 사랑, 그것이 가지는 힘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이 흘러 넘쳐 전달되는 감동은 울림이 상당하다. 그러나 내게는 좀 다른 의미로도 선물 같은 영화다.


포스터부터 근사한 것이 마음을 흔든다.



내 중고등학생 시절, 심지어 대학 시절 초반까지 가장 많이 읽었던 소설의 장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 답은 '가상현실 게임 판타지'일 것이다. 사실 어디가서 자랑처럼 늘어놓기에는 멋쩍은 일종의 guilty pleasure지만. 고백하자면 못해도 서른 작품(대부분 판타지 소설이란 단권이 아니기 때문에 권수로 치자면 200권을 훌쩍 넘지 않을까) 이상의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달빛 조각사> 등의 유명한 작품들은 물론 만화방, 책방에 가면 버젓이 책장 한 칸을 차지하던 가상현실 테마의 소설을 퀄리티를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읽었으니. 유독 거기에 꽂혔던 이유를 하나만 꼽을 순 없을 것 같다. 현실 적응이 더뎠던 내 도피처이자 언젠가 실현 가능할 것만 같은, 아니 '실현이 거의 확실한 판타지'라는 사실이 주된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건담도 좋고 샤이닝도 좋다. 킹콩도 좋고 오락실 게임도 다 나도 향유했던 문화다. 그러나.


그러니까 이 영화는 한 가상현실 게임 덕후의 꿈을 현존 최고의 기술력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충족시켜주고자 발벗고 나선 감격스러운 작품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그 안에 담긴 무수한 대중문화 레퍼런스에 젖어들기도 전에, 주인공 웨이드 와츠(타이 쉐리던)가 자신의 아지트에서 헤드 기어 장치를 착용하고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 영화가 몹시 신선하고 새롭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익히 보아온 영웅 서사의 문법이며 스티븐 스필버그와 디즈니로 대표되는 할리우드의 주제와 메시지. 게다가 그동안 질리도록 본 가상현실 게임 소설들과 이야기 구조도 거의 흡사하다. 아니, 원작이 '가상현실 게임 소설'이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우선 가상현실 게임의 실현은 꼭 엄청난 천재 한 명의 혁혁한 공로로 세상에 등장한다. 그리고 평범하다 못해 궁핍한 삶을 사는 주인공이 가상현실 게임에서 (대개 끈기, 성실함,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특별해지고 조력자들과 함께 (대기업, 국가 기관 등의 거대 세력이 단골로 등장하는) 악당의 마수에서 소중한 것과 게임 속 세상은 물론 현실의 세계를 지킨다.   


가상현실 세상 '오아시스'를 만든 천재 덕후 제임스 할리데이.


웨이드와 그의 친구들. 스필버그답게 인종 안배까지 골고루 한 팀원들. (사진엔 흑인 친구 한 명이 빠져있다)


영화의 악당으로 등장하는 대기업 I.O.I. 우연의 일치치고는 놀라운 작명 센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스필버그라서, 할리우드라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을 거의 만족시켜준 결과물이 나온 게 아닐까. 드문 일이다. 한 세계 혹은 세계관을 구현했다는 사실만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은. 그게 바로 덕후의 마음일까. 제법 오래 잊고 있던 내 어린 날의 로망이자 판타지가 영화를 통해서나마 구현된 것을 보고 있자니 어서 빨리 내가 직접 그 주인공이 되보고 싶은 낯뜨거운 욕심에 몸이 달아 두 번째 관람인 것이 무색할만큼 순식간에 영화의 끝을 다시 맞이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영화의 계절감이 강렬히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책을 봐도 그렇고 음악을 들어도 그렇다. 그런 힘이 좋은 영화, 좋은 책, 좋은 음악의 필수 조건이라 할 순 없지만, 충분 조건이기엔 분명하다. 삼천포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어떤 계절의 향수를 불러오는 영화보다 그런 힘을 가진 글과 음악이 훨씬 더 많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계절을 가장 직접적인 방식인 시각으로 투사할 수 있는 영화가 가장 유리한 매체일 것 같은데도. 단순한 추측을 하자면 노출 빈도가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봄을 이야기한 혹은 배경으로 한 그 어떤 책과 영화가 만들어진들 "벚꽃엔딩"의 그 엄청난 환기력을 능가할 수 있기란 쉽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시작은 계절감을 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의 더 큰 범주는 퀴어영화다. 지금껏 내가 본 (넓은 의미의) 퀴어영화라봐야 두 손에 꼽을 수준인데, 재미있는 건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최근 2년 사이에 본 영화라는 사실이고 그 영화들이 모두 최근 2년 새 본 가장 훌륭한 영화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캐롤>을 본 직후 찾아본 <가장 따뜻한 색, 블루>(한국 개봉은 2014년)부터 <캐롤>, 그리고 <문라이트>와 <콜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이 영화들은 나 뿐 아니라 대부분이 인정하는 퀴어영화의 어벤져스가 아닌가 싶다. 최근 나오는 퀴어영화들의 완성도가 높아진 건지 내가 그동안 몰랐던 건지는 모르겠다. 비슷해보여도 저마다 매력이 다른 네 편 모두 하고싶은 말이 많은 영화지만 이번에는 콜바유만 이야기하는 걸로.







사설이 길어졌지만 정말 콜바유의 얘기를 시작하자면, 안드레 애치먼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이 영화는 여름 로맨스극의 정석이라 불릴 만 하다. 게으른 탓에 더 근사한 사진을 싣지 못하지만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여름날 이탈리아의 풍광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무더운 여름날의 나른함과 무기력함이 영화의 초장을 감싼다. 학문의 목적으로 미국에서 자신의 스승이 있는 어느 이탈리아 시골 마을로 날아온 대학원생 올리버와 그가 6주간 머물 집에 사는 예술가 소년 엘리오의 첫만남은 그 여름날만큼이나 싱겁고 무기력하다.


그러고도 얼핏 지루해보이고 간지럽게 신경을 건드리는 두 남자의 감정을 향한 클로즈업과 와이드샷이 반복된다. 누구의 사랑에나 감정은 차곡차곡 쌓여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영화가 관객에게 사랑의 과정을 축구 중계하듯 보여주고 사랑의 감정을 관객에게 마구 들이미는지. 그러나 올리버와 엘리오는 오래도록 그 긴장의 끈을 양쪽에서 쥔 채 조심스런 줄다리기를 한다. 그리고 그 줄다리기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사랑의 대상이자 자아 발견의 대상이었기에 더 팽팽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감정의 중심에는 서로를 바라보고 탐구하는 조심스러운 시선에 있었다. 활달한 올리버의 일거수일투족을 곁눈질하는 엘리오와 피아노를 치고 글을 쓰는 엘리오를 보는 올리버의 시선.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여성을 만나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 쉽게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멈춰서고 서로를 보는 시선. 그리고 마침내 올리버와 엘리오가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기로 할 때, 그 감정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더 일찍 그 사랑을 인정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때쯤이면 영화는 관객에게 슬픈 예감을 안게 한다. 여름날의 무더위도 눈부심도 끝은 정해져 있듯이. 비록 그 예감은 반쯤은 맞았지만 또 반은 틀리다. 눈물의 작별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 올리버가 다시 돌아와 엘리오에게 청혼이라도 해야만 두 사람의 사랑이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의 교류는 올리버에게, 그리고 짐작컨대 엘리오에게는 더 큰 여운과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올리버 역을 맡은 아미 해머의 연기도 물론 훌륭했지만 엘리오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는 그야말로 최고의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다.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핫스타라는 말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말이지 않을까. 복잡한 감정들을 담아내는 그 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궁금증이 들게 하고 해석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앞으로 이 배우가 또 어느 영화에서 어떤 모습을 선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된다 다음 행보가.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의심할 여지 없는 좋은 영화지만, 이 영화는 꼭 같이 언급해야겠다. 이미 오래 전에 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쓸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으니. 토드 헤인스 감독,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주연의 <캐롤>이다. 만약 내멋대로 지금껏 봐온 로맨스/멜로 드라마 영화의 순위를 매긴다면 이 영화는 세 손가락 안에 넉넉히 들어오지 않을까. 아름답고 품위 있으며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영화. 보는 순간, 그리고 보고나서도 한동안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영화이자 케이트 블란쳇에 대한 팬심을 절정에 달하게 한 영화. 콜바유와 닮은 점도 많지만 또 다른 분위기와 결말 등 다른 점도 많은 캐롤은 내 겨울의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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