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 크리스토퍼 놀란은 언제나 시간을 다루는 감독이었다. 그러나 그의 영화에서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질서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메멘토』에서는 기억의 질서였고,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의 질서였으며, 『오펜하이머』에서는 역사의 질서였다. 그리고 『오디세이』에서 그가 마주하는 것은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실패에는 교훈이 있고, 고난에는 목적이 있으며, 비극에도 결국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때로 알 수 없는 이유로, 혹은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고. 오디세우스에게 닥치는 시련들도 그렇다. 폭풍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동료들은 허무하게 죽으며, 신들은 인간의 도덕과는 다른 논리로 세상을 움직인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오디세우스의 지혜도, 영웅성도 아니다. 끝까지 약속을 붙드는 그의 태도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포기하지 않는다. 죽은 전우들을 기억하는 의무를 버리지 않고,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를 잊지 않으며, 왕으로서의 책임도 내려놓지 않는다.

그는 수없이 실패하고 흔들리지만, 결국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신의를 지키려는 의지다. 단순히 계약을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기로 했는가."

 

그 질문에 끝까지 책임지는 삶이다. 운명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자신의 약속만큼은 배신하지 않는 것. 놀란은 그것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자유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신의는 인간 사이에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도 신의가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 신들은 결코 완전한 정의의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변덕스럽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잔인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제사를 드리고, 맹세를 지키며, 신을 향한 경외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신의 행동을 모두 이해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음에도 신뢰하는 것인가.

 

놀란은 이 주제를 자신의 특유의 연출 방식으로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그는 관객에게 모든 퍼즐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보는 것만 보여 주고,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은 끝까지 알 수 없는 채로 남겨 둔다. 덕분에 관객 역시 오디세우스와 같은 위치에 놓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다만 다음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 체험 자체가 영화의 메시지다. 삶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성된 대본을 받아본 적이 없고, 쪽대본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그래서 『오디세이』는 영웅의 승리를 찬양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운명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신의를 잃지 않는 사람에 대한 찬가다. 운명의 장난 앞에서도 누군가는 약속을 지키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누군가는 다시 집으로 향한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남기 위해.

 

단순하고 직관적인 UI

 

로컬라이제이션 프로젝트에서는 번역이 완료된 후 리뷰어가 다양한 수정 사항을 남긴다. 하지만 수정 내용이 많을수록 무엇이 어떻게 변경되었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유용한 도구가 TQAuditor(TQAuditor Quick Comparison).

QAEditor는 번역본과 리뷰 완료본을 비교하여 수정된 내용을 자동으로 추적해 주는 웹 기반 비교 도구로,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도 사용할 수 있으며, SDLXLIFF, XLIFF, TTX, TMX 등 다양한 이중언어(bilingual) 파일 형식을 지원한다. 

주요 기능

  • 번역본과 리뷰본의 변경 사항 자동 비교
  • 수정된 세그먼트 하이라이트
  • 태그(Tag) 변경 여부 확인
  • 수정된 세그먼트만 필터링
  • 비교 결과를 Excel로 내보내기
  • 회원가입 없이 빠른 비교 가능

사용 방법

  1. Translated file에 원본 번역 파일을 업로드
  2. Reviewed file에 리뷰가 완료된 파일을 업로드
  3. Upload selected files를 클릭
  4. 생성된 Comparison Report에서 변경 사항을 확인

언제 사용하면 좋을까?

QAEditor는 특히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유용합니다.

  • 리뷰어의 수정 패턴을 분석하고 싶을 때
  • 번역 품질 교육 자료를 만들 때
  • 번역가에게 피드백을 제공할 때
  • 수정량(Change Rate)을 빠르게 확인하고 싶을 때
  • LQA(Quality Evaluation)를 시작하기 전에 변경 사항을 먼저 검토하고 싶을 때

 

'Localization > 툴·테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구] 맞춤법 검사기  (2) 2020.04.30


수술받고 집에 돌아온 날 밤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시간은 갔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지금까지만 놓고 보자면 업 앤 다운은 있지만 잘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

간략하게 그동안 회복 일지를 정리해보자면.

2주차


수술하고 2주 정도 지나서 집도의랑 만나 수술 부위가 잘 아물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다리의 방사통/저림과 풋드랍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체크했다.

사실 집도의도 근력이 돌아오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다고 했는데 의외로 제일 먼저 회복된 건 발목 및 발가락 근력이었다. 수술 1주차 때까지만 해도 통증과 저림이 꽤 심해서 근력이 돌아왔는지 잘 못느껴졌고, 괜히 좀 쫄려서 혼자 근력 테스트를 해보지 못했는데 막상 해보니 거의 80%는 회복된 것 같다. 뒷꿈치로 걷는 것도 약간 어렵지만 가능했고 발가락들도 힘이 잘 들어갔다.

다만 2주차에도 다리 저림은 꽤 있는 채로 눈에 띄게 좋아진 건 없었다. 의사는 시간이 걸리니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수술 부위의 경우 상처는 잘 아물고 있었지만 더마본드(수술용 글루)가 많이 안 떨어지고 남아있었는데 그것도 역시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떨어질 거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3주차


3주차에 접어드니 수술부위는 물론 다리에도 통증은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없어졌다. 근력은 확실히 100% 회복되었다고는 힘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결국 제일 신경 쓰이는 건 다리 저림. 내가 수술을 받은 부위인 L4-5와 L5-S1 뒤의 신경과 이어지는 부분이 아래 그림의 정강이 바깥쪽 부위부터 시작해서 발등 발가락까지인데, 정확히 그 부분이 저리고 만지면 감각이 둔한 상태였다.

출처: deep peroneal nerve – Liberal Dictionary (tekportal.net)


그래도 다리 전체가 저리던 초반보단 훨씬 살만해졌지만, 원래 살만해지면 또 그 상태에서의 불편과 힘듦에 불만을 품기 마련. 수술 전에 적어도 3개월은 걸린다고 생각하자던 마음가짐은 어디로 갔는지. 어쨌든 상태가 좋아졌으니 하루에 시간을 정해 열심히 걷고 조금씩 걷는 시간을 늘리는 것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3주차가 끝날 쯤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서 하루 만보씩은 걸었다.

4주차


4주차도 3주차와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신경저림과 감각 둔한 건 거의 대동소이했고, 허리나 다리나 통증은 없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수술 부위가 간지러워진 것. 처음엔 심하지 않아서 무시했는데 점점 간지러움도 심해지고 두드러기처럼 수술 부위 주변으로 빨간 발진이 일어났다. 의사 상담 결과 아마도 더마본드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 거라고. 그러게 병원에서 진작 좀 떼어줬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쨌든 이미 자연적으로 글루 자체는 거의 떨어진 상태고 감염된 것도 아니니 연고만 열심히 바르면 없어질 거란다.

근력은 100% 가까이 돌아온 것 같다. 물론 발 전체가 아직도 저리고 해서 간단한 발 근력 운동을 하면 저릿하지만 근력 자체는 문제가 없다. 만오천보 정도씩 걷는 루틴에 추가로 아주 간단한 수준의 스트레칭 및 코어 운동도 하는데 다음주부터 물리치료를 시작하면 좀 더 제대로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이제 일도 다시 시작하는데 일을 하면 잡생각할 시간도 줄어들테고 시간이 좀 빨리 가겠지 싶어 기대 아닌 기대를 하고 있다.


게으른 내가 더 이상 회복기를 기록하진 않을 것 같지만, 완쾌(라는 표현은 좀 웃기지만)하는 날에는 기쁨에 겨워 뭐라 한마디라도 남기지 않을까. 제발.



*



수술 당일.

전날 자정과 당일 아침에 수술 전 먹는 탄수화물 음료를 마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나도 수술 전 자정부터는 무조건 금식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약간의 탄수화물 음료를 마시는 게 오히려 전신마취 부작용 등 리스크를 줄여준다고 한다. 병원마다 다른 것 같지만 처음 안 사실.

맛은 오묘하다. 단백질 음료와는 또 다른 맛.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 들어가서 나오는 순간까지 혼자였다. 사실 코로나의 더 큰 방해는 집 바로 앞에 있는 스탠포드 병원이 오미크론 입원 환자 폭증으로 모든 수술 환자를 안받는 상태였던 것. 그래서 진료는 집 앞 병원에서 받았지만 수술은 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서 받게 되었다. 당일 퇴원 예정이라 거리가 좀 부담되긴 했지만, 어쩌랴. 이 시국에 빨리빨리 수술받게 된 것만도 감사.



코로나 스크리닝하고, 접수를 하고 얼마 기다리지도 않아 수술 대기실로 입장. 가운으로 갈아입고 베드에 누우니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수술 2시간 전부터 오라길래 지루한 행정 처리만 하겠거니 했는데, 베드에 눕기까지 기다린 시간은 얼마되지 않았고 누운 채로 정신없이 시간이 갔다.

한 간호사는 IV를 삽입하며 복용약 히스토리부터 수술 전 이상 없는지 다양한 질문을 해오고, 또 다른 간호사는 내 신상 정보부터 수술 정보 등등을 재재확인. 그 사이에 마취과 의사가 와서 마취에 관해 또 주르륵 설명 및 질문. 그 다음엔 수술 집도의가 와서 또 대화. 그러더니 얼레벌레 준비 끝이라며 수술실 입장하실게요~

그리고 심호흡 몇번하니 잠들어 일어났을 때는 다시 회복실이었다. 1시간 조금 넘게 걸린 수술. 회복실에서 마취 기운에 헤롱거리며 정신을 수습하고, 의사가 수술 잘 됐다는 얘기 전해주고 가니 5시 반쯤. 12시 반쯤 병원에 도착했으니 반나절도 안 지난 것이다.

그리곤 친절한 간호사가 다가와 일어나볼까? 하며 나를 일으킨다. 수술 부위가 욱씬거리고 오른 다리가 많이 저렸지만 몇 걸음 걷는 건 가능했다. 그걸 본 간호사는 응, 됐네. 보호자 불러서 집에 가면 돼~ (...) 이미 알고 있었지만서도 당황쓰.

퇴원 전에 허리 보호대나 목발 등이 수술 직후에 필요하지는 않냐고 물어봤더니,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물론 BLT(bending, lifting, twisting, 수술전후로 병원에서 지겹도록 들은 규칙) 금지와 수술부위 감염 주의 등 수술후 관리 매뉴얼을 열심히 복기시켜주긴 했지만, 좀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 자유방임아닌가 싶어서. 그러나 결국 그 매뉴얼만 잘 지켜도 회복에 부족함은 없다는 개인적 생각.

우리나라 병원 중에 디스크수술(현미경절제술)을 외래로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대부분 3-7일 입원을 한다는데,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친구가 운전하는 차로 1시간 거리를 다시 되짚어 귀가했다.

수술비 얘기를 잠깐 하자면, 익히 알려져 있듯 미국은 보험 적용 전 의료비가 장난인가 싶을 정도로 황당하기 때문에 그 숫자를 말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대략 7만 달러, 그러니까 8천만원쯤...? 그것이 보험 커버를 받고 실제 내가 내야할 돈은 약 천 달러, 120만원쯤으로 줄어드는 매직이 벌어진다. 보험이 없는 사람에게 다른 구제책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있기야 하겠다만, 보험없이 살기 참 무서운 나라.


수술 후의 경과는 현재까지 좋다고 생각한다. 간략하게 기록해보자면.

수술 당일밤:
마취 부작용(어지러움, 속 울렁거림, 나른함)
수술 부위를 포함한 등 통증: 8
오른 다리의 저림: 9
옥시코돈(마약성 진통제), 멜록시캄, 가바펜틴 복용

수술 +2일:
마취 부작용은 대부분 사라짐.
수술 부위 통증: 7
오른 다리 저림: 8
옥시코돈(마약성 진통제), 멜록시캄, 가바펜틴 복용
수술 부위 닿지 않게 조심하며 샤워 시작

수술 +3일:
수술 부위 통증: 5-6
오른 다리 저림: 6
오른발 통증: 4
가볍게 걷기 시작
수술 부위 밴드 제거 및 새 밴드 부착

수술 +5일:
수술 부위 통증: 2-3
오른 다리 저림: 4-5
오른발 통증: 4
진통제 모두 끊음
수술 부위 밴드 완전 제거
그동안 근력 테스트는 해볼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해보니 발목/발가락 근력 거의 90% 회복


이제 7일이 지났는데 다리저림과 오른발 통증이 아직 제법 있긴 하지만 수술 부위는 다른 곳의 상처가 아물 때처럼 간지러움과 경미한 통증 정도만 남아있다. 무엇보다 근력이 거의 돌아왔다는 게 감격스러운. 걷기는 3-4천보씩 걷는 정도.

수술 후에 통증이나 저림 등 증상이 남아있으면 누구나 무섭고 걱정된다. 그러나 (수술이 정말 필요한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면) 수술하자마자 싹 사라지는 경우보다 증상이 남아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새로운 곳에 증상이 나타났거나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된 게 아니라면 마음을 편히 갖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마음의 안정과 스트레스 없는 상태가 회복에 가장 중요하니까.




*



'Every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에서 미세현미경 디스크 제거술 받다 - 2~4주차  (0) 2022.03.07
미국에서 미세현미경 디스크 제거술 받다 - 수술 전  (0) 2022.01.31
얼굴 대상포진 앓다  (0) 2021.01.19
한글날  (0) 2017.10.09
시작  (0) 2017.09.21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소식이지만, 2020년 로컬라이제이션 업계에서 단연 최대 화제의 뉴스였던 RWS 모라비아의 SDL 인수합병 소식. 가장 유명한 CAT 툴인 SDL 트라도스 스튜디오의 그 SDL이 맞다.


RWS to Buy SDL in Transformative Deal for the Language Industry - Austin Technology Council

RWS to Buy SDL in Transformative Deal for the Language Industry - Austin Technology Council

The boards of Super Agencies RWS and SDL announced on August 27, 2020 that they “have reached agreement on the terms of a recommended all-share merger of RWS and SDL,” in a deal that sees RWS buy SDL outright.

www.austintechnologycouncil.org



이 합병으로 RWS+SDL(인수 이후 SDL 브랜드는 사라졌으므로 사실상 그냥 RWS)은 가볍게 세계 최대의 Language Service Provider로 등극했다. 참고로 아래 표의 전 세계 10대 랭귀지 서비스 벤더의 매출을 보면 대충 로컬라이제이션 업계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1위인 RWS의 매출은 원화로 1조를 약간 넘기는 수준, 10위 Welocalize는 3천억 정도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작다고, 또는 크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몇십조는 우습게 넘기는 테크 업계와 비교하자면 초라해보일 수 있으나 번역/현지화 서비스 회사가 매출이 1조나 된다고 생각하면 상당한 규모라 느껴질 수도. 특히나 영세하기 그지없는 한국 로컬라이제이션 업계를 고려해보면.

2020년 매출 기준 세계 Language Service Provider 순위. 출처: The Largest Language Service Providers: 2021 (csa-research.com)



다만 이 철지난 뉴스가 갑자기 생각난 건, 이후 관련된 다른 기사를 보다가 갑자기 한국에 이 합병 소식에 관한 뉴스가 있을까 궁금해져서이다. 아니나 다를까, RWS의 한국어 블로그의 공지 외에는 관련 기사는 없다시피 했고 관련 소식을 다룬 블로그 글도 몇 개가 전부였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로컬라이제이션은 프리랜서 번역사와 번역 에이전시만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다시 들었달까. 시장 규모가 근본적으로 다른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칭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한국의 테크 및 콘텐츠 비즈니스의 규모와 성장세를 고려할 때도 한국의 로컬라이제이션은 지나치게 황무지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시간 문제일 뿐 인식은 나아질 것이고 산업은 커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그저 바라만 볼 뿐.



*


10월 중순쯤, 타호로 캠핑 트립을 갔다가 사단이 났다. 그전에도 편치 않았던 허리였지만 애써 무시하고 놀러다니고 무리하며 점점 불편함을 느꼈는데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재채기 한 번 잘못했다가 디스크가 터진 것. 그 날의 드라마는 TMI이니 스킵하기로 하고, 여하튼 그 이후로 진통제와 물리치료를 병행하며 보존치료를 해왔다.

처음에는 이부프로펜(600mg/일)을 먹었지만 효과가 떨어지는 듯 하여 재처방을 받은 NSAID는 멜록시캄(15mg/일). 물리치료는 사실 좀 늦게 시작했다. 중간에 한국을 다녀오는 무리수를 감행하느라. 지금 와서 생각해도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어찌됐든 그럼에도 허리디스크가 대개 그렇듯 몸은 나아지는 듯 싶었다. 사실 12월 초 한국에서 돌아온 후 물리치료를 시작했을 시점에는 허리 통증도 별로 없었고 오른쪽 엉치와 옆구리가 조금 아픈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12월 초-중순, 본격적으로 오른쪽 다리로 신경통이 뻗어나가며 통증과 저림이 심해져갔다. 스탠포드 병원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찾았지만 MRI는 찍을 필요 없다고 하며 진통제 먹고 물리치료 잘 받으라고 했다. (MRI도, 내시경도 미국은 참 어지간히도 안찍어준다.) 그렇게 몸을 사리며 일주일에 한번씩 물리치료를 받고 집에서는 물리치료실서 배운 운동과 걷기 운동을 하며 버텼다.


물리치료 하니 생각난 잡설이지만, 몇 년 전 한국에서 일하다 첫 디스크 탈출로 고생했던 시절 강남 회사 근처의 정형외과에서 받은 치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디스크 진단 후 한 달 정도를 물리치료(를 빙자한 마사지)와 원장이 직접 해주는 도수치료나 해주며 시간 끌다 결국 통증이 더 심해져 더 큰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샷을 맞고 운동하며 나아졌더랬다. 보험으로 비용이 상당히 커버되니 좋다고 받은 나도 나지만, 우리나라 디스크 치료에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 수술 권유 남발은 말할 것도 없고.


무튼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12월 말, 다리의 방사통과 저림 등은 줄었는데 평생 처음 겪는 증상이 시작됐다. 다리 힘빠짐 또는 풋드랍(foot drop). 시작은 경미한 수준의 증상이었다. 뒷꿈치로 걷는 게 조금 어려운 정도.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았고 그외 다른 근력 테스트를 해도 왼다리보다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물리치료사에게 물어봤더니, 다리 힘빠짐 자체는 자주 나타나는 허리디스크 증상 중 하나이고 대소변 장애가 동반되거나 힘빠짐 정도가 심각한 수준도 아니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해줬다.

그러기를 다시 얼마 후. 해가 바뀌고 1월 초가 되니 힘빠짐이 더 심해졌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스탠포드의 담당의에게 연락했더니 드디어 MRI 오더를 내주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운좋게도 전화한 당일 바로 MRI를 바로 찍고 의사도 이틀 후 바로 만났다(그야말로 미국 병원치곤 믿을 수 없는 속도). 근력 테스트 및 MRI 검사 결과, 1. L4-5와 L5-S1 두 군데 디스크 돌출이 있다는 것, 2. 풋드랍이 분명하게 있고 디스크 터진 후 시간이 꽤 지났으니 수술도 고려할 수 있으나 힘빠짐이 심하진 않으니 기다려 보자는 것, 3. 통증이 심하지 않으니 스테로이드 샷(신경차단술 등 시술)은 의미없다는 것.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나아지길 바라며.

내 디스크 돌출 부위


그러나 1월 초-중순이 지나가며 힘빠짐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심해졌다. 가장 먼저 오른발 엄지발가락의 힘이 빠졌고 다른 발가락이 뒤이었다. 발목 운동은 비교적 잘 되었지만 왼다리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거기다 조금만 걷거나 잠시 서있어도 발이 심하게 저리고 얼얼해졌다. 하루에도 몇번씩 고민을 했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수술의 리퍼럴을 받아 수술의와 만났다. 수술의는 자연 회복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네가 결정할 문제다, 라면서도 힘빠짐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건 좋지 않은 사인이니 수술을 권했다. 솔직히 두려웠고 많이 고민했다. 여기 저기 나름의 조사와 조언을 구하고 내린 결론은 결국 수술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집 근처에 믿을 만한 스탠포드 병원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미국 병원치고 드물게 빨리빨리 순조롭게 검사 및 일정이 진행됐다는 것. 그 과정에서 만난 간호사들과 의사들도 모두 프로페셔널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쓸데없는 걱정이나 인터넷 서치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미 충분히 informed decision을 내렸다고 믿었으니 남은 건 수술 잘 받고 재활 잘 하는 것 뿐. 1월 중순, 수술을 결정하고 난 후 수술받기 직전까지도 힘빠짐은 점점 심해졌다. 엄지 발가락은 물론 다른 발가락들에도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발목 운동도 확실히 더 힘들어진 수준. 발바닥의 통증과 저림도 악화된 건 마찬가지.

그리고 1월 25일, microdiscectomy (미세현미경 디스크 제거술) 수술을 했다.



 

스포일러 있음.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이 <오징어 게임>에 이어 전 세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공개된 다음날 밤, 6개의 에피소드를 앉은 자리에서, 아니 누운 자리에서 모두 끝냈다. 눈을 뗄 수 없는 정도였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눈을 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니 이 시리즈에 SF/판타지적 볼거리와 비주얼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또는 2% 부족한 이야기의 매끄러움이나 클리셰로 일부 장면에서는 스킵 버튼을 누르고 싶은 충동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연상호 감독의 웹툰 원작 드라마 <지옥>은 생각을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출처: 넷플릭스

 

천사(대탈출 악령감옥 편의 대두 귀신...?)가 나타나 이름을 부르며 몇날 몇시에 죽는다는 고지를 한다. 그 날 그 시간이 되면 여지없이 건장한 지옥의 사자들이 찾아와 고지를 받은 사람을 우선 후들겨 패며 고통을 준 후 눈부신 빛을 쏘며 태워 죽인다. 이를 시연이라 한다. 문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냐는 것이다. 새진리회와 의장 정진수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직접적인 죄를 심판하고 메세지를 전하기 위한 신의 적극적인 개입이라고. 그러나 중반 이후, 반전과 함께 이야기는 궤를 달리 한다. 사실 천사의 고지는 그 사람의 죄 유무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 공포와 반면교사로 유지되던 질서는 무너졌다. 사람들은 이제 생각해야 한다. 그럼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출처: 아마존

 

 

이 드라마 시리즈를 보고 나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던 소설. 바로 나의 최애 작가 테드 창의 단편 <지옥은 신의 부재> (원제: Hell is the Absence of God)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영화 <컨택트>의 원작 <네 인생의 이야기>가 수록된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담겨있다. 테드 창과 그의 소설에 관해 예찬하는 글을 꼭 쓸 것이기 때문에, 다른 소설 이야기는 각설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라 생각하는 소설이 바로 <지옥은 신의 부재>. 

 

줄거리는 이렇다.

 

이 세상에서는 천사가 강림하고 지옥의 풍경이 불쑥 지상에 비춰진다. 천사는 무작위한 장소에 강림하며 그 여파로 누구는 기적을 체험하기도 하고 누구는 물리적인 피해를 입어 죽기도 한다. 그러나 생전에 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거의 대부분' 지옥에 간다. 다리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주인공 닐은 어느 날 천사의 강림으로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잃었다. 아내를 만나기 위해 천국에 가야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닐. 그런데 천사 강림때 나타나는 천국의 빛을 보면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사 그 사람이 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잔혹한 흉악범이라도. 닐은 그 빛을 보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지옥>과 <지옥은 신의 부재> 두 작품은 동일한 근원적 질문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과 태도를 다르게 조명하기에 상당히 달라보이기도 하지만, 그 질문은 같다. 불행은 왜 일어나는가.

 

 

이쯤되면 이러한 테마의 원형격인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구약성경의 욥기. 그러니 테드 창이 인터뷰에서 해당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욥기'라고 밝힌 것도 이상하지 않다.

 

사탄과 하나님의 내기라는 다소 우화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는 욥기는 욥이라는 신앙심 깊은 부호가 자신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지독한 시련을 겪으며 그 답을 구하는 과정을 그린다. 위로한답시고 찾아온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뭔가 잘못이 있으니 그런 벌을 받는 거라고, 오늘날까지도 우리 마음 속에 은연 중에 자리잡고 있는 인과응보의 논리로 다그친다. 결국 그는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더 큰 복을 내려주며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출처: 위키아트

 

 

이해할 수 없는 불행과 고난이 선하고 악함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사실은 우리를 괴롭게 한다. 그리고 거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종교나 과학의 힘을 빌려 이유를 찾을 수도 있고 이유 없는 불행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느 편이건, 너무 괴롭지 않았으면.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