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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더에서 일할 때 클라이언트는 주로 이메일과 작업 요청의 형태로 존재할 뿐이었다.
 
프로젝트와 파일이 도착하고, 일정이 전달된다. 번역가가 질문을 보내면 프로젝트 매니저가 이를 정리해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한다. 한참 뒤 답변이 돌아오기도 하고, 번역이 거의 끝나갈 무렵 원문이나 일정이 바뀌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왜 원문이 확정되기도 전에 번역을 시작했을까. 왜 번역이 진행 중인데 제품은 계속 바뀔까. 로컬라이제이션팀에서 답하면 될 것 같은 질문에 왜 여러 부서의 확인이 필요할까.
 
클라이언트 사이드로 자리를 옮긴 뒤에야 그 질문들의 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벤더에게 하나의 작업을 보내기 전부터 클라이언트 안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이 움직인다. 제품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 기능을 개발하는 사람, 원문을 작성하는 사람, 출시 시장과 일정을 결정하는 사람, 법적 위험을 검토하는 사람까지 각자의 조건과 우선순위를 가지고 하나의 제품에 관여한다.
 
로컬라이제이션팀은 완성된 제품을 넘겨받아 번역을 완성하는 팀이 아니다. 이 여러 팀 사이에서 글로벌 사용자에게 필요한 조건을 만들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제품이 여러 언어로 출시될 수 있도록 연결하는 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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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라이제이션팀은 어디에 있을까

제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클라이언트마다 로컬라이제이션팀의 규모와 형태는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대규모 글로벌 기업에는 로컬라이제이션 전담 조직이 있고, 그 안에서도 프로그램 관리, 언어 품질, 엔지니어링과 벤더 관리 등의 역할이 나뉠 수 있다. 반면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는 프로덕트 매니저나 마케팅 담당자가 로컬라이제이션을 함께 관리한다. 전담자가 있더라도 한 사람이 프로젝트 운영, 벤더, 품질과 예산을 모두 책임지기도 한다.
 
로컬라이제이션팀이 회사의 어느 조직에 속하는지도 제각각이다. 제품과 소프트웨어가 중심인 기업에서는 프로덕트나 엔지니어링 조직 아래에 있는 경우가 많다. 마케팅 콘텐츠의 비중이 큰 회사에서는 마케팅이나 콘텐츠 조직에 속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핵심 목표라면 인터내셔널, 글로벌 오퍼레이션 또는 그로스(Growth) 조직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고객 지원이나 문서 콘텐츠가 중심이면 커스터머 익스피리언스 조직에 포함될 수도 있다.
 
팀이 놓인 자리는 단순한 조직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 회사가 로컬라이제이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 프로덕트 조직에 있다면 제품 개발 초기부터 국제화와 글로벌 사용자 경험에 관여하기 쉽다. 마케팅 조직에 있다면 브랜드와 시장별 콘텐츠 전략이 우선될 수 있다. 오퍼레이션 아래에서는 비용, 처리량과 프로세스 효율이 주요 지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며, 어디에 속하는 것이 반드시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로컬라이제이션을 출시 직전의 번역을 처리하는 작업으로만 보는 회사와 글로벌 제품을 만드는 핵심 역량으로 보는 회사에서 팀의 권한과 역할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클라이언트 로컬라이제이션팀의 사람들

클라이언트 사이드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역할은 로컬라이제이션 프로젝트 매니저 또는 프로그램 매니저다.
 
벤더 PM이 전달받은 콘텐츠를 일정과 예산에 맞춰 번역하고 납품하는 과정을 관리한다면, 클라이언트 PM은 어떤 콘텐츠를 왜 현지화해야 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제품팀의 출시 계획을 파악하고, 필요한 언어와 작업 범위를 정하고, 내부 일정과 벤더의 작업 일정을 연결한다. 번역 중 발생한 질문은 제품 담당자나 개발자, 콘텐츠 작성자 등 답을 가진 사람에게 전달한다. 번역이 제품에 적용된 뒤에는 테스트와 수정을 거쳐 실제 출시까지 이어지도록 관리한다.
 
프로그램 매니저는 개별 프로젝트보다 더 큰 운영 구조를 본다. 지원 언어와 벤더 전략을 세우고, 번역 관리 시스템과 자동화 프로세스를 구축하며, 비용과 품질 지표를 관리한다. 콘텐츠의 중요도와 위험에 따라 전문 번역, 기계 번역, 리뷰와 테스트를 어떻게 조합할지도 결정한다. 한 기업의 로컬라이제이션 프로그램의 전략적 방향을 수립하고, 다른 내부 관계자 및 리더십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고 로컬라이제이션 프로그램의 가치를 알리고 세일즈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또 다른 중요한 역할로 벤더 매니저와 퀄리티 매니저도 빠질 수 없다. 벤더 매니저는 프로젝트에 적합한 번역 업체를 선정하고 온보딩하며, 계약과 비용, 작업 역량, 성과를 관리한다. 단순히 작업을 발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언어와 프로젝트에 필요한 리소스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벤더와 장기적인 협업 관계를 만드는 역할이다.

퀄리티 매니저는 번역의 품질 기준을 세우고 그것이 실제 결과물에 일관되게 적용되는지를 살핀다. 스타일 가이드와 용어집을 관리하고, 리뷰와 품질 평가 방식을 설계하며, 반복되는 오류의 원인을 찾아 번역가와 벤더, 내부 리뷰어에게 피드백이 돌아가도록 한다. 팀의 규모에 따라 벤더 관리와 품질 관리, 프로젝트 운영을 한 사람이 함께 맡기도 한다.
 
회사에 따라 특정 언어의 품질을 담당하는 랭귀지 매니저 랭귀지 리드가 있을 수 있다. 이들은 핵심 용어의 번역을 결정하고 용어집과 스타일 가이드를 관리한다. 벤더의 번역을 검토하고, 해당 시장의 사용자에게 자연스럽고 브랜드에 맞는 언어인지 판단한다. 
 
인터내셔널라이제이션 엔지니어, 글로벌라이제이션 엔지니어 또는 로컬라이제이션 엔지니어가 기술적인 기반을 담당하기도 한다. 제품의 텍스트가 번역 가능한 형태로 관리되는지 확인하고, 번역 관리 시스템과 제품의 콘텐츠 시스템을 연결한다. 날짜와 통화 형식, 복수형,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언어 등 다양한 언어와 지역을 제품이 제대로 지원하도록 만든다.
 
다만 위에서도 말했듯 이 구성은 클라이언트 회사마다 제각각이고, 솔직한 말로 압도적 다수의 회사들에서 로컬라이제이션팀은 존재감이 거의 없거나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내가 경험한 회사들과 업계 동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대기업에서도 로컬라이제이션팀이 놀라울 정도로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거나 다른 부서의 이해도가 현저히 낮은 경우가 많다.

내 경험을 놓고 얘기하자면, 이전에 근무했던 중간 규모의 게임 스튜디오는 지금의 회사보다 규모는 훨씬 작았다. 그러나 게임에서 언어와 문화적 경험은 플레이어의 몰입과 제품의 성패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기 때문에 로컬라이제이션팀의 규모나 다른 팀의 이해도도 상당했다. 반대로 지금 근무하는 회사는 훨씬 큰 기업이지만, 2년 전 내가 처음 합류했을 때만 해도 팀의 규모가 5명 미만 수준이었고, 다른 팀 사이에서도 그 존재를 모르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회사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로컬라이제이션 조직도 크거나 성숙한 것은 아니라는 것. 로컬라이제이션팀의 영향력은 회사의 크기보다, 그 회사가 글로벌 사용자 경험에서 로컬라이제이션의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더 크게 좌우된다.

로컬라이제이션팀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클라이언트 사이드의 로컬라이제이션은 전담팀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래에 소개하는 직무와 팀이 모두 로컬라이제이션을 본업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로컬라이제이션팀에서 일하면 높은 확률로 협업하게 되는 사람들이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어떤 기능을 언제, 어느 시장에 출시할지 결정한다. 새로운 기능에 어떤 콘텐츠가 포함되는지, 지원 국가는 어디인지에 따라 로컬라이제이션의 범위와 일정도 달라진다. 로컬라이제이션팀이 제품 개발 초기에 참여하지 못하면 영어 제품이 거의 완성된 뒤 촉박한 일정으로 번역 요청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제품이 여러 언어를 기술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든다. 텍스트를 코드에서 분리하고, 각 언어의 날짜·숫자·통화 형식을 처리하며, 번역된 콘텐츠가 제품에 제대로 표시되도록 구현한다. 화면에서 문장이 잘리는 문제가 반복된다면 번역을 줄이는 대신 디자인이나 코드를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UX 라이터콘텐츠 디자이너는 제품 안의 버튼, 메뉴, 오류 메시지와 안내 문구를 작성한다. 테크니컬 라이터는 도움말과 사용 설명서를 만든다. 명확하고 일관된 원문은 좋은 번역의 출발점이다. 반대로 맥락 없는 한두 단어와 모호한 문장은 번역가에게 추측을 요구한다.
 
마케팅팀과 지역 담당팀은 광고, 캠페인, 이메일과 앱스토어 콘텐츠를 현지 시장에 맞게 조정한다. 이들은 현지의 문화와 사용자 반응을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하지만, 한 시장의 효과를 우선하는 지역팀과 여러 언어의 일관성과 확장성을 관리하는 로컬라이제이션팀의 관점이 다를 때도 있다.
 
이건 나도 직접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는 바인데, 본사 로컬라이제이션팀과 지역 마케팅팀 또는 지역 오피스 사이에는 때때로 일종의 묘한 긴장감이 존재한다. 지역팀은 본사에서 번역한 문구가 현지에서는 자연스럽지 않거나 충분히 효과적이지 않다고 느끼고, 본사팀은 지역별 수정이 쌓이면서 브랜드 메시지와 용어의 일관성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한다. 지역팀의 입장에서는 현지 시장을 가장 잘 아는 자신들에게 더 많은 결정권이 필요하고, 본사팀의 입장에서는 모든 시장이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일 경우 품질과 일정, 비용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이 긴장은 어느 한쪽이 틀려서라기보다 서로 다른 범위의 책임에서 비롯된다. 지역팀은 하나의 시장을 깊이 보고, 본사 로컬라이제이션팀은 여러 시장을 동시에 바라본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팀의 전문성을 활용하면서도 변경 사항이 용어집과 번역 메모리, 향후 콘텐츠에 다시 반영될 수 있는 협업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QA와 테스팅팀은 번역된 콘텐츠가 실제 제품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문장이 화면 밖으로 잘리거나 영어가 남아 있는 문제, 잘못된 날짜와 통화 형식, 특정 언어에서만 발생하는 기능 오류 등을 찾는다. 언어 자체의 문제를 확인하는 LQA는 내부에서 수행하거나 전문 벤더에 맡길 수 있다.
 
법무와 정책 담당팀은 이용 약관, 개인정보 보호, 소비자 고지와 지역별 규제에 관련된 내용을 검토한다. 짧은 문장 하나도 법적 책임이나 사용자 동의와 관련되어 있다면 로컬라이제이션팀이 혼자 결정할 수 없다. 클라이언트의 답변이 늦어지는 이유는 답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답을 가진 사람이 한 명이 아니기 때문일 때가 많다.
 
구매팀은 외부 LSP의 선정과 계약, 등을 로컬라이제이션팀과 함께 분담하곤 한다. 로컬라이제이션팀이 언어 품질과 운영 역량을 우선한다면 구매팀은 가격, 보안, 계약 조건과 회사 전체의 공급업체 전략을 함께 고려한다.
 
로컬라이제이션팀은 이처럼 서로 다른 목표와 언어를 사용하는 팀들 사이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언어와 언어 사이의 번역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부서와 부서 사이를 번역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AI와 함께 달라지는 클라이언트 사이드의 역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이 전통적인 클라이언트 사이드의 구조였다면, 지난 몇 년 사이 AI의 부상은 클라이언트 사이드 로컬라이제이션팀의 위치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이전에는 번역 요청을 접수하고 벤더에 전달한 뒤 납품을 관리하는 운영 업무가 팀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제 기계 번역과 대규모 언어 모델, 자동 품질 평가와 워크플로 자동화가 발전하면서 이런 작업들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거나 훨씬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로컬라이제이션팀의 필요가 단순히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자동화할지, 어떤 콘텐츠에 사람의 검토가 필요한지, 품질과 브랜드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지 결정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어떤 모델과 데이터를 사용할지, 회사의 콘텐츠를 외부 AI 도구에 입력해도 되는지, 결과물의 오류와 편향을 어떻게 평가할지에는 보안, 법무와 엔지니어링팀의 협력이 필요하다. AI가 만든 문장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보다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통제하는 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따라 클라이언트 로컬라이제이션팀의 역할도 번역 운영에서 언어 기술과 품질 거버넌스, 시스템 설계와 글로벌 콘텐츠 전략으로 넓어지고 있다. 팀이 단순한 번역 요청 창구에 머물면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보이기 쉽다. 반대로 여러 언어의 데이터와 품질, 문화적 위험을 이해하는 조직으로 자리 잡는다면 회사가 AI를 활용해 글로벌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 중요한 전문성을 제공할 수 있다. AI는 이러한 변화를 처음 만든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진행되고 있던 변화를 크게 가속한 계기에 가깝다.
 

클라이언트에서 바라본 로컬라이제이션

벤더에서 가장 가까이 보였던 것이 납기와 품질이었다면, 클라이언트에서는 우선순위와 의사결정의 과정을 더 가까이 보게 된다.
 
모든 요청이 중요해 보여도 인력과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제품팀은 빠른 출시를 원하고, QA팀은 테스트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케팅팀은 캠페인 날짜를 이미 정했고, 법무팀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
 
로컬라이제이션팀은 이런 조건 속에서 여러 언어의 사용자가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만든다. 벤더에 충분한 맥락을 제공하고 싶어도 내부 결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 있다. 넉넉한 작업 시간을 주고 싶어도 로컬라이제이션팀 역시 프로젝트에 뒤늦게 초대받았을 수 있다. 제품의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직접 코드나 출시 일정을 바꿀 권한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다른 팀의 결정을 기다리는 역할에 머물 수는 없다. 어떤 정보가 언제 필요한지 미리 알리고, 번역과 테스트 시간을 제품 계획에 반영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반복되는 문제를 데이터로 보여주고, 프로세스와 제품을 바꿀 사람을 찾아야 한다. 글로벌 사용자에게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를 출시 전에 발견하고, 때로는 이미 정해진 결정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벤더에서 일할 때는 클라이언트가 답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클라이언트 사이드로 옮긴 뒤에는 답을 찾기 위해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업무의 큰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테이블의 양쪽은 서로 다른 풍경을 본다. 클라이언트는 제품의 맥락과 방향을 제공하고, 벤더는 언어와 시장, 대규모 운영에 필요한 전문성을 더한다. 어느 한쪽만으로 전체 과정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서로 다른 언어뿐 아니라, 서로 다른 팀과 목표를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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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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