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번역 경험에 대해 이런 저런 썰을 풀 만큼 대단한 경력의 번역가가 아니면서도 이런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최근 타성에 젖어(병장 뿐 아니라 일병도 타성에 젖는다) 깊은 고민 없이 빠르게 번역을 해치우려 드는 것 같아 

되새김질하며 공부를 좀 해보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둘 째는, 나같은 초보 뒤에도 후발주자가 있을 거 아닌가. 

감히 조금이라도 유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어 문법이나 문장 구조 같은 것들을 (얘기할 일도 있겠지만) 분석하려는 것도 아니며

가능하면 "번역"의 관점에서 고민한 것들만 집중하고 싶다. 

그동안 내가 번역을 해오며 있었던 일이나 어려움을 겪었던 아주 짤막한 사례만 가져와서.

절대 귀찮아서가 아니라 번역 자료도 엄연히 계약물이고 멋대로 여기저기 올려 놓으면 안되니까? 메이비?

별 거 없는 썰이 그나마 바닥이 날 경우엔 먼 옛날 학교 번역 수업에서 정리했던 사례, 

혹은 다른 이의 번역 사례까지 마구 가져와서 써먹으려 한다.



시작은 시간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거의 처음 정식으로 번역 수업을 들었을 때 일이다.


The first farmer were gardeners who nurtured individual plants,

and they sought out the microclimates and patches of soil that favored those plants.


이 문장을 번역한 게 까마득한 옛날인데 아직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아니,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번역 수업 과제로 저 문장을 포함한 몇 문장을 번역한 것을 발표하며 

내 번역의 정당성을 교수님과 학우들에게 설득해야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때 나는 교수님께 그야말로 

몸서리를 칠 만큼 길고 긴 설교를 들어야 했다. 발표 당시 나는 저 문장을 이렇게 번역했다. 


최초의 농부들은 정원 가꾸듯 몇 종류의 농작물을 재배했고

그러한 작물 재배에 적합한 미기후와 토양을 갖춘 경작지를 찾아냈다.


시시해보이지만 내가 혼난 이유는 하나, 'patches of soil'을 살리지 않았다는 것. 

당시 수업을 맡은 교수님이 워낙에 깐깐하기로 유명하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린 날의 내가 굳이 'patches'를 '소규모' 따위로 살려야 하느냐고 대들어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중요한 건, 그리고 내가 이 일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건 순전히 그 다음에 펼쳐진 일 때문이다. 

내 불량한 태도가 맘에 안 드신 교수님이 조곤조곤, 하지만 힘있는 어투로 쏟아내던 

그 백과사전적, 국어사전적 지식에 완전히 압도된 것이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 한 단어에서 그토록 많은 지식을 뽐내는 일의 '쿨'함에 반한 걸 지도 모르겠다. 

무슨 이유에서든 그 후로 그 교수님은 번역가로서 내 롤모델의 자리를 한동안 차지했었더랬다.


물론, 번역을 할 때에는, 특히 민감한 내용의 문서를 번역할 때에는 단어 하나 관사 하나도 빼먹지 않고 

번역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뻔하지만 중요한 교훈도 얻었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이 일화를 처음으로 꺼내든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거의 1년 이상 내가 해온 번역 작업 대부분이 

비디오, 디지털 매체 등이다보니 정확한 번역보다는 구어체의 자연스러움이나 쉽고 짧은 언어로의 치환이 

주된 목표였던 까닭에 게을리 하고 있던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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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아직도 돈과 기술보단 시간과 체력이 더 많은 풋내기 번역가지만 많은 전문 번역가들은 번역 효율성을 위해 Computer-Assisted Translation(CAT) 툴을 사용한다. Machine-aid human translation(MAHT), Interactive translation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Machine Translation과는 개념이 약간 다르다. CAT은 번역가가 번역 시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거고 MT는 말그대로 기계가 번역을 하는 것. 

그런데 사실 요새는 MT 소프트웨어에 인간이 개입해 번역 완성도를 높이고 CAT 툴에도 기계가 반복되는 패턴 번역은 자동으로 처리해주니 명확히 구분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각설하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CAT 툴 중 하나가 트라도스(SDL Trados Studio)다. 학부생 시절 맛만 살짝 본 후 무료체험까지 해봤는데, 사용하기 전과 사용한 후의 번역 경험(속도, 정확성, 완성도) 차이가 그야말로 내가 중학생 때 교과서 영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와 지금 번역을 할 때의 차이 그 이상이랄까.
문법 교정과 오탈자 검열, 적합한 어휘의 검색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Traslation Memory(TM)라 하여 내가 번역한 데이터를 저장해 똑같은 패턴이 나중에 나오면 자동으로 번역해주는 시스템과 내가 번역한 어휘 쌍 모음집을 구축해주기 때문에 사용을 할수록 효율성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몇 달 사용해보고도 느꼈는데 몇 년을 쓰면 오죽할까.


그런데 왜 당장에 사지 않느냐.

상당히 비싸다. 가장 저렴한 기본 모델이 825 달러. 한화로 거의 천만 원에 달한다. 정말 전문 번역가가 될 마음이 없고서야 구매할 마음이 들지 않을 고가의 사치품인 것이다. 

그래서 학부생 때도 졸업 후에도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전문 번역가로서의 길을 잡은 마당에 길게 내다보고 투자를 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사이트를 다시 찾았다. 


그랬더니 웬걸,



국제 번역의  달이 있는 지도 처음 알았다.

굳이 날을 지우고 달로 바꿔 다분히 상업적인 느낌만 들고 정말 그런 날이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쨌든 반가운 할인 행사.
지르고 싶은 욕구가 활활 타오른다.
그러다가도 정말 내게 필요할까, 내가 잘 활용할 수 있을까,
대학원에 진학하고 CAT 툴 등을 제대로 배운 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보아하니 내년 번역의  달에도 할인 행사를 할 것 같은데 그 때까지 기다릴까, 하는 마음에 망설여진다.



아아아아




*


그런데 곧 나올 999+ 달러짜리 아이폰 X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려하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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