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알리레 사엔스의 『Aristotle and Dante Discover the Secrets of the Universe』를 읽는 동안 떠오른 한국 소설이 있었다.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다. 하나는 미국 남서부를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의 일상과 사랑을 유쾌하고도 씁쓸하게 그려낸 현대소설이다. 그럼에도 두 작품이 겹쳐 보인 것은 함께 묻고 있는 하나의 질문 때문.

 

아리스토텔레스(아리)는 세상보다 자기 마음을 더 이해하지 못하는 소년이다. 가족의 침묵과 자신의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그는 누구와도 쉽게 가까워지지 못한다. 반면 단테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점은 사랑이 특별한 사건으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함께 수영을 하고, 차를 타고, 별을 바라보고, 긴 침묵을 나누는 평범한 시간들이 결국 한 사람의 세계를 바꾼다. 우주의 비밀은 거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존재가 내 삶의 좌표를 바꾸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작품은 조용히 보여 준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의 우주론은 거창한 철학 대신 횟집 테이블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회 한 점, 술 한잔, 친구와의 대화, 연인과의 저녁 식사처럼 너무 평범해서 지나치기 쉬운 순간들을 통해 삶을 들여다본다. '우럭 한 점'은 기억이고, 관계이며, 살아 있다는 감각이다. 결국 '우주의 맛'은 미식의 절정이 아니라 한 사람과 우럭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탄생한다.

 

두 작품은 모두 '우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방향은 인간을 향한다. 우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침묵을 나누는 시간 속에 있고, 서로의 상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과정 속에 있으며, 평범한 술상 위에 놓인 우럭 한 점 속에도 존재한다. 이러한 시선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끊임없이 특별한 경험을 찾아다닌다. 더 먼 여행, 더 큰 성공, 더 강렬한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두 작품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삶을 바꾸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우주는 설명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경험해야 하는 세계이며, 거대한 철학적 진리보다 누군가와 나누는 한 끼 식사, 한 번의 대화, 한 사람의 손길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우주의 비밀은 별들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있다. 단 한 사람이라는 우주의 비밀이.

 

아마존에서 구입 가능한 비공식 한국어 번역본?

 

 

영어 원서 읽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권하기에도 좋을 만큼 술술 읽히는 것도 매력이다. 문장은 짧고 어휘도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지는 않다. 오히려 담백한 문장 덕분에 감정이 더 깊이 스며든다. 영어 원서를 한 권 끝내 보고 싶다면 도전해봄직 하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울리는 재난문자에도 무덤덤해진다. 일요일 오전, 어김없이 내가 살지 않는 도시에서 종교행사 등 모임을 자제하라는 호소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는 재난문자를 받고 생각했다. 청와대 신문고가 떠올랐고 광화문 앞에 모이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옳고 그르고 좋고 싫고의 문제를 떠나 그것들이 어떻게 일상에 스며들었는지를 생각하며, 그 익숙해짐이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한다.

-20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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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하는 말을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내 생각과 내 말 사이에는 입이라는 허술하기 짝없는 문지기 하나만 존재하여 그 문만 넘으면 주워담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은 생각을 함부로 할 때가 있으므로, 말이 함부로 나오는 건 그만큼 쉽다. 글은 그렇지 않다. 내 생각과 내 글 사이에는 글자수만큼의 문지기가 존재한다. 그래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말하듯이 함부로 쓰인 글을 보면 그래서 괴롭다. 비문 투성이에 입에 담을 수 없는 표현으로 가득한 글을 보고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다. 맞춤법을 지키고 고상한 표현을 들먹이며 함부로 쓴 글을 보면 몇 배는 더 서러워진다. 하물며 그 글에 사람의 목숨이 좌지우지되는 걸 보면, 글을 다루는 일이 업인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낀다. 생각은 함부로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말은 함부로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글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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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가 으레 그렇듯 갖은 주제를 두고 제법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누군가 내게 부모님은 뭐라고 하세요, 라고 물으니 나도 모르게 어머니는 이렇게 저렇게라고 하셨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쪽이 굳이 아버지는요, 라고 묻길래 나는 또 이상한 심술이 생겨 계셨으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네요, 라고 대답하니 흐르는 익숙한 잠깐의 어색한 공기. 속되게도 그 사실이 날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냥 우쭐해지던 것도, 어쩔 줄 몰라하는 저들이 얄미워지는 것도 없다. 다만 이제는 아버지가 없는 걸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아버지 나이 정도 먹으면 아무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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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이라는 재능.

별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유튜브를 시작한다길래 응원하면서도 은연 중 무시했다. 우연히 생각이 나 방문해보니, 몇 달이 지나도록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하며 느리지만 착실히 구독자가 늘어나고 있더랬다. 부끄러웠다. 꾸준함이라는 그 재능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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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러듯 들불처럼 타오르다 어느새 다시 관심에서 멀어진 듯한 뉴스에 대한 뒷북. 영화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의 번역을 둘러싼 논란이 상당했다. 주로 문학작품, 뉴스 기사나 칼럼, 심지어 FTA까지 다양한 방면의 오역 논란이 늘 있었지만 요즘의 오역 논란 트렌드는 영화 자막이 주도하는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 대중문화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영향이 막대하니까. 하물며 MCU 10년의 집대성이라는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영화 자막에 대한 관심과 경계심(?)도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게 쉽게 짐작 간다. 아니다 다를까, 수준 높은 한국의 영화 관객들, 그 중에서도 가장 덕력 높고 자부심 강하며 영어도 잘 하는 마블 팬들은 이 영화의 자막에 분노했다.

의사가 잘못을 저지르면 의사의 의견이 궁금해지기 마련이고 성직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해당 종교를 믿는 사람의 의견이 궁금해지기 마련. 오역 논란이 있을 때면, 그것도 이렇게 큰 이슈가 될 때면 직업 번역가라 소개하며 여전히 겸연쩍어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으레 좋은 먹잇감이 된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은 반쯤은 호기심, 반쯤은 날 난처하게 만들 생각으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러니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ice-breaking 거리로 제격이라 생각하며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러면 나는 사람에 따라 적당히 장단을 맞추며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을 하면서도 알게모르게 편을 들게 되고 옹호하는 입장이 되기도 하며 나름의 중립을 지키려 의식적으로 애쓰곤 했다. 지금 당장 떠올려보자면 본격적으로 번역을 업으로 삼은 후 내가 질문을 받을 정도로 큰 이슈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번역 논란과 이번 마블 영화 논란 정도였던 것 같다. 물론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이를테면 '번역론 논쟁'에 가까웠고 후자는 엄연한 '오역 논란'이니. 전자의 경우 누군가 묻는다면 전문가인냥 열심을 다해 대답할 수 있으나 후자는 마치 공범인냥 나도 모르게 변명을 하게 된다. 내 스스로도 영화 번역의 세계에 대한 오래된 반감과 불신이 있음에도.


하지만 내 반감과 불신은 어떤 한 개인 번역가를 향한 것이 아니다. 명백한 오역을 그것도 상습적으로 저지른 번역가의 잘못은 엄연하지만 청와대가 나서서 그 한 사람을 영화판에서 제명하고 다시는 발 못 붙이게 할 수도 없고 그게 해답이 아니라는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익숙하고도 지겨운 논쟁이다. 잘못한 개인에 대한 책임 추궁과 처벌이 중요하냐, 아니면 시스템과 구조의 개선이 중요하냐. 국가적 비극이 일어날 때 그랬고 사기업의 횡포가 드러날 때 그랬고 소위 엘리트 혹은 사회 지도층의 일탈이 폭로될 때도 그랬다. 둘 다 중요하며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거야 어느 누가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인 처벌과 시스템 개선 중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한다면 나는 후자라 생각한다. 

생각해본다. 우리는 얼마나 '잘' 분노하는지. '잘' 한다는 건 '너무 쉽게' (그리고 때론 과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옳게, 훌륭하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분노 덕에 분명 발전도 있었고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에 대한 분노는 오래 못 가기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힌 게 아닌 이상에야 그토록 오래 적개심을 품는 건 정신적 에너지 소모 차원에서 몹시 비효율적인 일이니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걸 한국인의 냄비 근성이라 욕할 일도 아니며 대중이 우매하다 혀를 찰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언론이 있고 정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때때로 이런 식의 말에 회색분자 또는 이상주의자라며 핀잔이 돌아오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다시 <어벤져스> 영화 오역 논란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그 번역가를 욕하는 무수한 댓글들과 자극적인 기사들이 부당하다 말할 수 없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시장을 자랑하는 한국 영화업계의 놀랄만큼 조악한 시스템과 구조 속에서 그런 오역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고 머리로 이해는 할 수 있을지언정 너그러히 눈감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그 지나친 비난과 지나친 분노가 가슴 아프고 걱정스럽다. 직접 관련된 건 아니지만 번역이라는 큰 집단으로 볼 때 같은 곳에 속한 사람이라 더 그렇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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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븐 스틸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봤다. 두 번째 관람이다. 먼저는 아이맥스 3D로 봤고 이번에는 4D였다. 처음이자 마지막 4D 경험이 <드래곤 길들이기2>(2014)였으니 무려 4년 만에 두 번째 4D 극장을 방문한 셈이다. 그 후로, 아니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판타지, SF, 액션 등 4D로 볼 수 있는 쟁쟁한 영화들이 있었지만 한번도 어떤 영화를 꼭 4D로  보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같은 영화를 2D로 관람했을 때와 비교해 3D 관람이 줬던 영화적 즐거움과 감동(<아바타>와 <그래비티> 등)에 비해 3D와 비교해 4D 관람이 줄 수 있는 그것이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 게 가장 큰 이유이다. 상영관과 스크린의 크기가 훨씬 작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그렇게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4D 극장을 평생 두 번째로, 그것도 이미 한 번 본 영화를 보려 찾은 것이다.

흔히 이 영화를 두고 대중문화에 바치는 헌사, 그리고 지난 수십년 간 대중문화를 향유했던 세대에, 그 시절과 지금을 사는 덕후들에게 바치는 선물이라 표현한다. 대중문화를 향한 스필버그의 사랑, 그것이 가지는 힘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이 흘러 넘쳐 전달되는 감동은 울림이 상당하다. 그러나 내게는 좀 다른 의미로도 선물 같은 영화다.


포스터부터 근사한 것이 마음을 흔든다.



내 중고등학생 시절, 심지어 대학 시절 초반까지 가장 많이 읽었던 소설의 장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 답은 '가상현실 게임 판타지'일 것이다. 사실 어디가서 자랑처럼 늘어놓기에는 멋쩍은 일종의 guilty pleasure지만. 고백하자면 못해도 서른 작품(대부분 판타지 소설이란 단권이 아니기 때문에 권수로 치자면 200권을 훌쩍 넘지 않을까) 이상의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달빛 조각사> 등의 유명한 작품들은 물론 만화방, 책방에 가면 버젓이 책장 한 칸을 차지하던 가상현실 테마의 소설을 퀄리티를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읽었으니. 유독 거기에 꽂혔던 이유를 하나만 꼽을 순 없을 것 같다. 현실 적응이 더뎠던 내 도피처이자 언젠가 실현 가능할 것만 같은, 아니 '실현이 거의 확실한 판타지'라는 사실이 주된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건담도 좋고 샤이닝도 좋다. 킹콩도 좋고 오락실 게임도 다 나도 향유했던 문화다. 그러나.


그러니까 이 영화는 한 가상현실 게임 덕후의 꿈을 현존 최고의 기술력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충족시켜주고자 발벗고 나선 감격스러운 작품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그 안에 담긴 무수한 대중문화 레퍼런스에 젖어들기도 전에, 주인공 웨이드 와츠(타이 쉐리던)가 자신의 아지트에서 헤드 기어 장치를 착용하고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 영화가 몹시 신선하고 새롭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익히 보아온 영웅 서사의 문법이며 스티븐 스필버그와 디즈니로 대표되는 할리우드의 주제와 메시지. 게다가 그동안 질리도록 본 가상현실 게임 소설들과 이야기 구조도 거의 흡사하다. 아니, 원작이 '가상현실 게임 소설'이니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우선 가상현실 게임의 실현은 꼭 엄청난 천재 한 명의 혁혁한 공로로 세상에 등장한다. 그리고 평범하다 못해 궁핍한 삶을 사는 주인공이 가상현실 게임에서 (대개 끈기, 성실함,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특별해지고 조력자들과 함께 (대기업, 국가 기관 등의 거대 세력이 단골로 등장하는) 악당의 마수에서 소중한 것과 게임 속 세상은 물론 현실의 세계를 지킨다.   


가상현실 세상 '오아시스'를 만든 천재 덕후 제임스 할리데이.


웨이드와 그의 친구들. 스필버그답게 인종 안배까지 골고루 한 팀원들. (사진엔 흑인 친구 한 명이 빠져있다)


영화의 악당으로 등장하는 대기업 I.O.I. 우연의 일치치고는 놀라운 작명 센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스필버그라서, 할리우드라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을 거의 만족시켜준 결과물이 나온 게 아닐까. 드문 일이다. 한 세계 혹은 세계관을 구현했다는 사실만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은. 그게 바로 덕후의 마음일까. 제법 오래 잊고 있던 내 어린 날의 로망이자 판타지가 영화를 통해서나마 구현된 것을 보고 있자니 어서 빨리 내가 직접 그 주인공이 되보고 싶은 낯뜨거운 욕심에 몸이 달아 두 번째 관람인 것이 무색할만큼 순식간에 영화의 끝을 다시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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