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이라는 재능.

별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유튜브를 시작한다길래 응원하면서도 은연 중 무시했다. 우연히 생각이 나 방문해보니, 몇 달이 지나도록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하며 느리지만 착실히 구독자가 늘어나고 있더랬다. 부끄러웠다. 꾸준함이라는 그 재능이 부러웠다.

'Everyday > 폰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부로  (0) 2019.04.22
나이  (0) 2019.04.21
오역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는 물음에  (0) 2018.05.17
노트  (0) 2017.11.29
디즈니월드  (0) 2017.11.17

늘 그러듯 들불처럼 타오르다 어느새 다시 관심에서 멀어진 듯한 뉴스에 대한 뒷북. 영화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의 번역을 둘러싼 논란이 상당했다. 주로 문학작품, 뉴스 기사나 칼럼, 심지어 FTA까지 다양한 방면의 오역 논란이 늘 있었지만 요즘의 오역 논란 트렌드는 영화 자막이 주도하는 것 같다. 그만큼 우리나라 대중문화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영향이 막대하니까. 하물며 MCU 10년의 집대성이라는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영화 자막에 대한 관심과 경계심(?)도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게 쉽게 짐작 간다. 아니다 다를까, 수준 높은 한국의 영화 관객들, 그 중에서도 가장 덕력 높고 자부심 강하며 영어도 잘 하는 마블 팬들은 이 영화의 자막에 분노했다.

의사가 잘못을 저지르면 의사의 의견이 궁금해지기 마련이고 성직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해당 종교를 믿는 사람의 의견이 궁금해지기 마련. 오역 논란이 있을 때면, 그것도 이렇게 큰 이슈가 될 때면 직업 번역가라 소개하며 여전히 겸연쩍어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으레 좋은 먹잇감이 된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은 반쯤은 호기심, 반쯤은 날 난처하게 만들 생각으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러니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ice-breaking 거리로 제격이라 생각하며 묻는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러면 나는 사람에 따라 적당히 장단을 맞추며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을 하면서도 알게모르게 편을 들게 되고 옹호하는 입장이 되기도 하며 나름의 중립을 지키려 의식적으로 애쓰곤 했다. 지금 당장 떠올려보자면 본격적으로 번역을 업으로 삼은 후 내가 질문을 받을 정도로 큰 이슈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번역 논란과 이번 마블 영화 논란 정도였던 것 같다. 물론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이를테면 '번역론 논쟁'에 가까웠고 후자는 엄연한 '오역 논란'이니. 전자의 경우 누군가 묻는다면 전문가인냥 열심을 다해 대답할 수 있으나 후자는 마치 공범인냥 나도 모르게 변명을 하게 된다. 내 스스로도 영화 번역의 세계에 대한 오래된 반감과 불신이 있음에도.


하지만 내 반감과 불신은 어떤 한 개인 번역가를 향한 것이 아니다. 명백한 오역을 그것도 상습적으로 저지른 번역가의 잘못은 엄연하지만 청와대가 나서서 그 한 사람을 영화판에서 제명하고 다시는 발 못 붙이게 할 수도 없고 그게 해답이 아니라는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익숙하고도 지겨운 논쟁이다. 잘못한 개인에 대한 책임 추궁과 처벌이 중요하냐, 아니면 시스템과 구조의 개선이 중요하냐. 국가적 비극이 일어날 때 그랬고 사기업의 횡포가 드러날 때 그랬고 소위 엘리트 혹은 사회 지도층의 일탈이 폭로될 때도 그랬다. 둘 다 중요하며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거야 어느 누가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인 처벌과 시스템 개선 중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한다면 나는 후자라 생각한다. 

생각해본다. 우리는 얼마나 '잘' 분노하는지. '잘' 한다는 건 '너무 쉽게' (그리고 때론 과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옳게, 훌륭하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분노 덕에 분명 발전도 있었고 변화도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에 대한 분노는 오래 못 가기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힌 게 아닌 이상에야 그토록 오래 적개심을 품는 건 정신적 에너지 소모 차원에서 몹시 비효율적인 일이니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걸 한국인의 냄비 근성이라 욕할 일도 아니며 대중이 우매하다 혀를 찰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언론이 있고 정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때때로 이런 식의 말에 회색분자 또는 이상주의자라며 핀잔이 돌아오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다시 <어벤져스> 영화 오역 논란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그 번역가를 욕하는 무수한 댓글들과 자극적인 기사들이 부당하다 말할 수 없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시장을 자랑하는 한국 영화업계의 놀랄만큼 조악한 시스템과 구조 속에서 그런 오역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고 머리로 이해는 할 수 있을지언정 너그러히 눈감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그 지나친 비난과 지나친 분노가 가슴 아프고 걱정스럽다. 직접 관련된 건 아니지만 번역이라는 큰 집단으로 볼 때 같은 곳에 속한 사람이라 더 그렇겠다.



'Everyday > 폰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  (0) 2019.04.21
꾸준함이라는 재능  (0) 2019.04.20
노트  (0) 2017.11.29
디즈니월드  (0) 2017.11.17
한국시리즈  (0) 2017.11.01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에버노트나 아이폰 노트 앱을 열면 가끔 지난 노트들을 가만 들여다본다.

제법 쌓인 노트들을 뒤적이다보면 감상에 잠시 젖고 지금으로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메모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특히나 에버노트보다는 간단한 메모를 남기는 데 쓰는 애플 메모에 그런 것들이 많다. 누군가의 이름, 연락처, 주소, 날짜나 시간, 어떤 사이트의 링크, 누군가와 주고받았을 어떤 금액들, 노래 제목이나 가사, 영화 제목, 책을 보다 마음에 든 문장과 단어들.

예컨대 2014년 11월 27일 오후엔 "thomas rhett logic"이라는 짤막한 메모를 남겼다. 그게 뭔지 아무래도 기억이 나지 않아 검색에 검색을 하다보면 그게 무엇이었는지 내가 왜 그 메모를 남겼는 지 당시 상황이 기억이 제법 또렷하게 난다.

당연히도, 어떤 노트들은 왜 남겼는 지 아무리 검색을 해도 당시 상황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엔 의미를 모를 숫자의 나열이나,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낯선 말들이 있기도 하다. 그럴 때면 어느 한 보잘 것 없는 역사를 발굴하는 고고학도의 마음으로 그 상징들을 해석하고 상상해본다. 거기에 묘한 즐거움이 있다.

*



 

'Everyday > 폰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꾸준함이라는 재능  (0) 2019.04.20
오역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는 물음에  (0) 2018.05.17
디즈니월드  (0) 2017.11.17
한국시리즈  (0) 2017.11.01
이국적인  (0) 2017.09.25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은 정해졌고 일은 끝났다.

주어진 한 달 남짓한 시간, 시작은 디즈니월드였다. 내 꿈의 여행지라던가, 디즈니의 엄청난 덕후(디즈니의 팬을 자처할 순 있지만)라던가 등은 아니었으나, 디즈니월드는 소위 취향 박살 수준의 여행지에 가까웠다. 하나 하나 어지간한 놀이공원 크기인 네 개의 테마파크는 적어도 그 중 하나는 취향에 걸리게 만드는데 내 경우엔 애니멀 킹덤이었다(​판​도라 넌 감동이었어).

비록 디즈니 매직의 융단폭격은 이따금 부담스러웠지만 (특히 이름부터 매직헐한 매직 킹덤에서) 불꽃놀이에 이르러서는 그저 넋놓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정말로 디즈니월드는 각 테마파크의 나이트 쇼 보러 간다는 말이 맞나보다.

디즈니월드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혹은 디즈니랜드와는 다른 분위기다. 미국인들의 꿈과 희망의 총본산답게 관광지의 느낌은 별로 없고, 그야말로 미국인들+남미에서 온 사람들(특히 브라질인들의 디즈니월드 사랑이 그렇게 크다고한다) 천지다. 제대로 디즈니월드를 즐기려면 4-5일에서 일주일 이상도 잡고 와야하니 외국 관광객이 적을 수 밖에. 그래도 매직킹덤에는 당일로 놀러 온 관광객이 북적북적하다.

결론은,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여행이었다. 하루 2만 걸음씩 걷는 강행군이었지만. 다만 디즈니월드 후기를 올리자니 점점 블로그의 목적이 변질되는 것 같아 이걸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손 놓고 있다. 번역가는 물론이고 집사로서의 정체성은 안드로메다로...

*



'Everyday > 폰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꾸준함이라는 재능  (0) 2019.04.20
오역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는 물음에  (0) 2018.05.17
노트  (0) 2017.11.29
한국시리즈  (0) 2017.11.01
이국적인  (0) 2017.09.25


프로 스포츠 중 거의 유일하게 챙겨보며 열성을 다해 응원하는 것이 야구인데, 그것도 타국에 나오면 그 열정을 지키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시차도 시차거니와, 제대로 시청을 할 만한 경로도 마땅치 않으니까. 그런 이유에 더해 공부한다 일한다 몸과 마음이 바빠 시즌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는 시즌 통틀어서 손에 꼽을만큼 정도의 경기밖에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보다 솔직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면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기대 이하였기 때문인 것도...어쩌면 제일 큰 이유?

그리고 어느새 찬바람과 함께 시작된 가을야구. 이쯤되면 내가 응원하는 팀이 벌써 다섯으로 추려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응원팀은 두산 베어스이다. 속전속결 진행된 가을야구 끝에 야구팬이라면 알겠지만 두산 베어스와 기아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까지 모두 끝났다.

지난 해 그토록 열심히 야구를 챙겨보고 응원을 했던 것이 무색할만큼 관심을 껐다가 팀 성적이 쑥쑥 올라가고 가을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듯 열혈팬이 된 나였지만, 염치 불구하고 나를 한껏 만족시켜주길 바랐는데 결과는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어떻게 되었는 지는 굳이 내 입으로 말 하지 않아야지.

너무 낙담하지 않으려 애써 별 거 아닌 일로 치부하고 마음을 비워버리면 그 사실 자체는 정말 별 거 아닌 게 되는데, 몹시도 이상한 것은 주위에 당최 기아팬이 왜 이렇게 많은 지 까똑이 불이 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약이 오를 뿐이고.

'Everyday > 폰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꾸준함이라는 재능  (0) 2019.04.20
오역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는 물음에  (0) 2018.05.17
노트  (0) 2017.11.29
디즈니월드  (0) 2017.11.17
이국적인  (0) 2017.09.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