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폰X를 사용한 지도 보름이 넘게 지났다. 그동안 대체로 몹시 만족하며 잘 쓰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하고 가장 만족스러운 기능이라면 역시 카메라다.

직전 아이폰6 시절까지만 해도 카메라의 성능은 둘 째치고 16GB의 용량이 버거워 사진 촬영에 인색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자꾸 비교해서 미안, 너도 좋은 폰이었어.

그래서 사진 문외한임에도 불구 이것저것 휴대폰으로 찍는 사진이 부쩍 많아졌다.

물론, 그 중 압도적인 피사체는 민용. 그 중에서도 portrait mode, 인물 사진 모드로 즐겨 촬영하고 있다. 

그래봤자 최근 3-4일 정도 기간이지만, 그 사진들을 추려봤다.




일명 스핑크스 자세를 취한 채 비몽사몽인 무언가 생각에 잠긴 민용. 

저 자세를 취할 때 등 위로 혹처럼 봉긋 솟아오르는 네 개의 다리가 난 좋다.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려본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럴듯하게 사진이 찍혔다. 여전히 상념에 잠긴 채

창 밖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민용.




고양이는 흔히 '고양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보는 재미가 있다. 갑작스레 펄쩍 뛴다 거나 눈이 휘둥그레 커져 뜀박질을 한다 거나

등등이 그 예인데, 워낙에 감각이 예민한 지라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지금도 뭔가 바닥에서 내 눈엔 보이지도 않는 벌레를

봤는 지, 아니면 바람에 움직이는 먼지를 봤는 지 순식간에 눈이 바뀌고 사냥꾼 모드가 됐다.




고양이를 놀아주는 건 진득함과 영민함이 필요한 일이다. 물론 장난감을 마구 휘둘러도 신나서 달려들 때도 있지만, 몇 번 같은 장난감으로 놀아주면 아무리 흔들어도 저렇게 쳐다만 보다가 기회를 노려 낚아챈다. 아무렴 고양이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툭툭 잽만 날리고 시원찮은 반응을 보이는 민용. 그러나 적절한 밀당으로 약을 살살 올리면(...) 다시 적극적으로 덤벼든다. 




이름을 작게 부르자 먼 산을 보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민용. 여느 집사가 그러듯 정말 자기 이름을 알아 듣는 것인 지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결론은 분명 알아듣지만 자기가 내킬 때만 돌아보거나 대답한다.




고양이의 표정도 사람처럼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나는 민용이의 이런 표정을 가장 좋아한다.

뭔가를 쳐다보는 표정도 비몽사몽 졸린 표정도 아닌 그야말로 정말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 

다소곳이 겹쳐 모은 앞발은 귀욤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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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시작은 이랬다.


나는 겨울방학을 맞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애인의 집으로 떠나 두어달 머물렀다. 그리고 그 이웃집엔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집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당시 나이 일곱 살, 사람으로 치자면 중년을 넘은 아주머니지만 늠름하게도 이름은 어흥이인.





이 아주머니가 내 인생에, 우리 인생에 그토록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줄이야. 




그 친구가 집을 비우며 어흥이를 우리가 며칠간 돌봐주게 되었는데, 그 며칠은 우리가 이 영롱한 눈빛의 생명체에 

완전히 홀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흔히 반려동물이 있건 없건 사람을 고양이 형이나 개 형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우리는 그 며칠 만에 우리의 (집사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한 것이다. 속된 말로 입덕. 


그리고 어흥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그 전부터 우린 고양이를 입양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고 

그러던 찰나 어흥이를 맡게 되어 한 번 직접 키워보고 결정해보자, 하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



.



.







?



이 녀석이 우리에게 왔다. 지역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만난 방년 1세 소년.


일단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마음 먹은 후 우리는 여러 유기동물 보호소를 찾아갔다. 한국과 달리 반려동물 문화가 

깊숙하게 뿌리 내린 미국은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대형 보호소가 곳곳에 있다. 그 중 시카고에서 대표적인 곳이 

PAWS(동물의 발), 그리고 Anti-Cruelty Society(동물학대 없는 사회)이다. 

혹시 어떤 곳인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링크.


 PAWS

http://www.pawschicago.org/


Anti-Cruelty Society

http://anticruelty.org/


사이트를 들어가보면 알 수 있지만 생각보다 거대한 시설에 수많은 고양이와 개, 혹은 다른 동물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 속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입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 우리가 처음 찾은 곳은 PAWSChicago. 

좀 더 재정적 여유가 있어 보이는 시설이나 백인 위주의 봉사자들까지 더 "힙"해보인다는 속된 이유 때문이었다. 





살아있다는 건 멋진 일이야!






근사한 내부와 여유로운 사람들 






역시나 근사한 고양이 놀이터

지정된 시간 동안 저렇게 풀어두고 보통 각자 케이지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퇴짜를 맞았다. 미국 영주권/시민권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 미국에서 계속 살 지 안 살 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환경에 입양을 보낼 수 없다는 단호한 거절에 우리는 이해는 하면서도 실망감을 안은 채 그곳을 나섰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어차피 미국에서 졸업 후 계속 일을 할 생각이었는데.

이번엔 조금 요령을 부려보자 하는 마음으로 찾은 보호소가 Anti-Cruelty Society.





이곳도 규모나 건물 외양은 PAWS 못지 않은 대형 보호소이다





확실히 PAWS에 비하면 내부 시설이나 유기동물 케이지 청결도 등은 부족하다

그럼에도 준수한 수준




우리가 요령껏 비자 문제를 눙쳤던 덕분인 지, 아니면 이곳이 덜 깐깐해서였는 지, 우리는 서류 심사(?)를 무사 통과했다. 

그리고 둘러본 많은 고양이들. 생후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깽이들부터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묘들까지.


아직 사연이랄 게 없어 뵈는 천진한 호기심의 눈, 

무슨 사연이 있는 지 사람만 다가가면 구석에 숨어 반짝이는 눈,

사연이 어떻든 고양이다운 나른함에 젖어 반쯤 감긴 눈,

언젠가부터 사연을 사연이 아닌 세월로 감당했을 지친 눈.


인간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그 눈빛들을 그토록 다양하게 그토록 오래 보는 것은 뜻밖에도 슬픈 일이었다.

나는 그날을 그렇게 기억한다. 고양이를 입양해 설레고 기뻤던 감정 어딘가엔

분명 그 눈빛들을 향한 이상한 슬픔이 묻어 있었다. 


정작 입양할 고양이를 결정하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어리거나 너무 나이 든 고양이를 피하는 편의성과 이왕 데려올 거 예쁘고 귀여운 미묘를 찾자는 욕심으로.

그럼에도 그 중 하필 이 녀석을 데려온 것은 그저 마음이 더 쓰여서.

활기왕성할 나이답게 조심스럽지만 적극적인 눈빛으로

우릴 똑바로 쳐다보던 그 모습 때문에.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래서 이 친구가 우리에게 온 것이다. 민용이가.

2016년이 막 시작했던 어느 날에.

민용이라는 이름의 기원에는 두 가지 유력한 설이 있다.


첫 째, 둘 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우리가 '미뇽'(미뇽-신뇽-망나뇽의 그 미뇽)의 이름으로 

신묘한 한글의 두음법칙과 역유음화 과정을 거친 후 '민용'이라 불렀다는 설.

둘 째, 우리 둘의 집안 돌림자를 한 자 씩 따와서 민+용, 그래서 '민용'이 되었다는 설.


이 아무말 대잔치 같은 썰 중에 진실이 있다는 것은 진실.





아직 집사의 분수를 모르던 즐거운 한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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