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영화의 계절감이 강렬히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책을 봐도 그렇고 음악을 들어도 그렇다. 그런 힘이 좋은 영화, 좋은 책, 좋은 음악의 필수 조건이라 할 순 없지만, 충분 조건이기엔 분명하다. 삼천포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어떤 계절의 향수를 불러오는 영화보다 그런 힘을 가진 글과 음악이 훨씬 더 많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계절을 가장 직접적인 방식인 시각으로 투사할 수 있는 영화가 가장 유리한 매체일 것 같은데도. 단순한 추측을 하자면 노출 빈도가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봄을 이야기한 혹은 배경으로 한 그 어떤 책과 영화가 만들어진들 "벚꽃엔딩"의 그 엄청난 환기력을 능가할 수 있기란 쉽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시작은 계절감을 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의 더 큰 범주는 퀴어영화다. 지금껏 내가 본 (넓은 의미의) 퀴어영화라봐야 두 손에 꼽을 수준인데, 재미있는 건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최근 2년 사이에 본 영화라는 사실이고 그 영화들이 모두 최근 2년 새 본 가장 훌륭한 영화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캐롤>을 본 직후 찾아본 <가장 따뜻한 색, 블루>(한국 개봉은 2014년)부터 <캐롤>, 그리고 <문라이트>와 <콜미 바이 유어 네임>까지. 이 영화들은 나 뿐 아니라 대부분이 인정하는 퀴어영화의 어벤져스가 아닌가 싶다. 최근 나오는 퀴어영화들의 완성도가 높아진 건지 내가 그동안 몰랐던 건지는 모르겠다. 비슷해보여도 저마다 매력이 다른 네 편 모두 하고싶은 말이 많은 영화지만 이번에는 콜바유만 이야기하는 걸로.







사설이 길어졌지만 정말 콜바유의 얘기를 시작하자면, 안드레 애치먼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이 영화는 여름 로맨스극의 정석이라 불릴 만 하다. 게으른 탓에 더 근사한 사진을 싣지 못하지만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여름날 이탈리아의 풍광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무더운 여름날의 나른함과 무기력함이 영화의 초장을 감싼다. 학문의 목적으로 미국에서 자신의 스승이 있는 어느 이탈리아 시골 마을로 날아온 대학원생 올리버와 그가 6주간 머물 집에 사는 예술가 소년 엘리오의 첫만남은 그 여름날만큼이나 싱겁고 무기력하다.


그러고도 얼핏 지루해보이고 간지럽게 신경을 건드리는 두 남자의 감정을 향한 클로즈업과 와이드샷이 반복된다. 누구의 사랑에나 감정은 차곡차곡 쌓여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영화가 관객에게 사랑의 과정을 축구 중계하듯 보여주고 사랑의 감정을 관객에게 마구 들이미는지. 그러나 올리버와 엘리오는 오래도록 그 긴장의 끈을 양쪽에서 쥔 채 조심스런 줄다리기를 한다. 그리고 그 줄다리기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사랑의 대상이자 자아 발견의 대상이었기에 더 팽팽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감정의 중심에는 서로를 바라보고 탐구하는 조심스러운 시선에 있었다. 활달한 올리버의 일거수일투족을 곁눈질하는 엘리오와 피아노를 치고 글을 쓰는 엘리오를 보는 올리버의 시선.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여성을 만나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 쉽게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멈춰서고 서로를 보는 시선. 그리고 마침내 올리버와 엘리오가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기로 할 때, 그 감정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더 일찍 그 사랑을 인정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때쯤이면 영화는 관객에게 슬픈 예감을 안게 한다. 여름날의 무더위도 눈부심도 끝은 정해져 있듯이. 비록 그 예감은 반쯤은 맞았지만 또 반은 틀리다. 눈물의 작별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 올리버가 다시 돌아와 엘리오에게 청혼이라도 해야만 두 사람의 사랑이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의 교류는 올리버에게, 그리고 짐작컨대 엘리오에게는 더 큰 여운과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올리버 역을 맡은 아미 해머의 연기도 물론 훌륭했지만 엘리오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는 그야말로 최고의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다.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핫스타라는 말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말이지 않을까. 복잡한 감정들을 담아내는 그 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궁금증이 들게 하고 해석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앞으로 이 배우가 또 어느 영화에서 어떤 모습을 선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된다 다음 행보가.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의심할 여지 없는 좋은 영화지만, 이 영화는 꼭 같이 언급해야겠다. 이미 오래 전에 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쓸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으니. 토드 헤인스 감독,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주연의 <캐롤>이다. 만약 내멋대로 지금껏 봐온 로맨스/멜로 드라마 영화의 순위를 매긴다면 이 영화는 세 손가락 안에 넉넉히 들어오지 않을까. 아름답고 품위 있으며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영화. 보는 순간, 그리고 보고나서도 한동안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영화이자 케이트 블란쳇에 대한 팬심을 절정에 달하게 한 영화. 콜바유와 닮은 점도 많지만 또 다른 분위기와 결말 등 다른 점도 많은 캐롤은 내 겨울의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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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어답터라는 말에 나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보다는 새로운 기술이든 새로운 제품이든 검증이 되었다고 판단한 후에야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편이다.

그러니 새 아이폰이 나왔다고 선주문에 덤벼들고 이렇게 '개봉기'를 쓴다는 게 내겐 신선하고도 어색한 일이다.

그래서 어설프겠지만, 아이폰 x(라 쓰고 '텐'이라 읽는)를 받고 하루 동안 써 본 감상을 늘어놓아보려 한다.



Say hello to the future 안녕 미래야



애플 홈페이지에서 진행한 실시간 선주문에 실패한 뒤 한참 후, 그러니까 두 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 미국의 통신사 T-mobile에서 손쉽게 성공했다. 그것도 출시 당일 (11월 3일) 배송예정으로. 그 외 Sprint 등 미국의 다른 통신사에서 진행하는 아이폰 선주문도 꽤 늦게까지 출시 당일 배송이 가능했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통신사를 끼고 사는 일의 번거로움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만 해본다. 나 역시 통신사를 끼고 할부로 샀지만, 덕분에 350불 정도의 통신사 지원금과 쓰던 아이폰6 반납금 100~150불 사이를 지원받아 500불 정도에 아이폰x를 샀으니, 감지덕지. 

그리고 정확히 11월 3일 자칭 미래란 녀석이 도착했다. 



전문 리뷰어도 아니고 좋은 사진가는 더더욱 아니기에 아이폰6로 찍은 허접한 사진들 미리 양해를...



실버/스페이스 그레이 (아무리 봐도 화이트 앤 블랙인데) 중 내가 구입한 모델은 스페이스 그레이



디자인은 애플이 거의 늘 그랬듯 완성도 높다. 실물이 예쁘네, 하는 진부한 소릴 하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내가 찍은 사진보단 확실히 실물이 더 아름답다. 아이폰6 사용자로서 뒷면이 이토록 깨끗해진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실버 모델을 사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은색 옆테두리 때문인데, 꼭 플라스틱처럼 보이기도 하고 패션의 완성은 뭐니 뭐니 해도 통일성이라고 믿기에. 사진으론 잘 안 보이지만 유리 뒷면은 짙은 검은색이라기보단 옅은 파스텔톤의 검은색이다. 아무리 그래도 스페이스 그레이라고 우기기엔 좀... 더구나 아이폰6의 스페이스 그레이 색을 생각하면. 이름이야 어쨌든 색감과 디자인은 대만족, 카툭튀는, 뭐, 패스.


그럼 디자인에 대한 더 실감나고 유익한 정보는 유튜버들 및 한국의 전문 블로거들께 토스하고

하루 정도 쓰면서 느꼈던 것들을 간단히 말해보자면,



먼저 가장 큰 걱정거리이자 관심사였던 페이스 ID.



Homebuttonless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알아먹는다. 안경을 끼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 팁이라면 처음에 안경을 끼고 얼굴을 등록하니 안경을 벗은 얼굴을 인식을 못했는데, 안경을 벗고 얼굴 등록을 했더니 그 땐 안경을 쓴 얼굴도 잘 인식했다. 나만 그런 걸 지도?

어쨌든 인식은 빠릿빠릿했고 어두운 곳이든, 빛이 강한 곳이든 실내든 야외든 문제 없었다. 다만, 홍채 인식이 아니라 안면 인식이기에 휴대폰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열린다. 덕분에 내가 그동안 휴대폰을 얼마나 가까이 들여다 보고 있었는 지도 깨닫... 



그리고 사라진 홈버튼

과 방황하는 엄지 손가락.



     

낯설지만 생각보다 좋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낯설지만 생각보다 편하고 쉽다. 오히려 홈으로 돌아가는 기능에 있어서는 홈버튼보다도 편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물론 1일차이니 아직까지는 엄지손가락이 방황하는 일도 있고, 스와이프를 화면 중간까지 해서 멈추는 동작 (위 사진 왼쪽), 즉 앱 멀티태스킹 탭을 여는 동작은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대신, 앱 실행 화면에서 이전 실행 앱으로 넘어가는 동작은 홈버튼보다 편리한데, 스와이프 바에 손가락을 대고 옆으로 넘기기만 하면 (위 사진 오른쪽) 된다. 

물론 어떻게 5년을 넘게 쓴 홈버튼이 하루만에 잊혀지겠냐만 인간은 무섭게 적응한다.

그리고 스와이프 바는 생각보다 더 적응하기 쉬운 기능이다.



그 다음은 많은 사람들이 꼽는 아이폰x 최대의 무기, 카메라. 



내 첫 작품은 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



만만한게 민용이인지라 곤히 자던 녀석을 깨워 앉혀놓고 찍은 사진들. 뭐랄까, 신세계다. 따로 고성능 카메라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니 당연히 이전에 쓰던 아이폰6의 사진 경험과 비교할 수 밖에 없는데 정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차이가 났다. 

장비가 좋으니 갑자기 사진 촬영의 열정이 마구 샘솟기까지. 아직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촬영을 해보진 않았어도 벌써 홀딱 반해버렸다. 키노트에서 그렇게 자랑한 4k 동영상 화질 또한 아이폰6와의 비교가 민망할 정도로 훌륭했다. 

앞으로 올라올 고양이들의 사진은 퀄리티가 몹시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단연코 카메라는 아이폰x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일 것 같다.



그 다음은 홈버튼과 함께 무수한 논란의 대상이었던 the Notch



위 사진은 유튜브 동영상 재생 시 기본 화면, 아래 사진은 두 손가락으로 화면 끝까지 펼 칠 때 화면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아래 사진의 왼쪽 끝 중간부분이 notch로 움푹 가려지고, 가장자리 화면이 좀 잘린다.)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notch는 생각보다 신경을 거슬리지 않는다. 특히 유튜브 애청자로서 동영상 시청에 대해 걱정이 컸는데 웬걸, 사람의 시야각은(적어도 내 시야각은) 생각보다 좁았다. 집중 해서 동영상을 보니 거의 불편함을 못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분명 개인차가 있을 듯 하다. 난 둔한 사람이니까.



가로보기 화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상단 오른쪽에서 쓸어내리면 나타나는 컨트롤 센터



더불어 아이폰x에서 변화된 주요 UI 중 하나인 notch 옆에서 쓸어내리는 컨트롤 센터도 불만은 없으나 역시나 습관은 습관인지라 자꾸 스와이프 바로 손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왼쪽은 애플의 자체 지도 애플맵 화면, 오른쪽은 구글맵 화면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상에서는 상단의 중간 부분이 notch로 가려진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나뿐 아니라 각종 어플과 프로그램도 이 notch를 품은 아이폰x의 화면에 아직 적응을 덜 한지라 일부 앱들은 위 사진의 구글맵처럼 홈버튼이 있고 상단부도 광활한 이전 아이폰 화면에 맞춰져 있다. 반면 사파리, 애플맵 등 애플이 만든 어플이나 유튜브, 아마존, 심지어 카카오톡도 화면을 어느새 맞춰놓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화면 비율 최적화가 안 된 어플이 적고 빠른 시일 내에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슬슬 지쳐가니 마무리해야겠다. 

사소한 불만 하나.



너도 홈버튼이 그리운 거니



키패드를 열면, 저런 화면이 나오는데 넓직하고 좋구만, 하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자판 밑에 자리잡은 황량한 공간. 언어 전환 키와 마이크 키만 덜렁 있고 텅 빈 공간이 애플답지 않은 마감이다.

홈버튼을 향한 추모인 지 추가될 새로운 기능의 예고인 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예상해본다.



One more thing...




ㅋㅋㅋㅋㅋ

재미있고 신기하다. 딱히 뭐라 더 할 말은 없다.

다만 얼굴 인식 기능이 앞으로 더 다양하게 발전되고 활용되리라 생각한다.



총평을 하자면, 단점은 분명 있으나 개인적으론 보조금 등을 통해 거의 반값에 구입했다는 점, 아이폰6 사용자로서 극적인 변화를 맛보는 즐거움이 워낙 크다는 점에서 기대 이상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선택은 각자의 몫.

*


 

 

 

 

말 오랜만에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본 것 같다. 사실 지금껏 본 영화를 통틀어서도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가 그리 많지는 않은데 이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 중에서도 손꼽을 만한 영화였다. 물론 어쩌면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어른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션 베이커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으며 2017년 칸 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되었고 한국에서는 2018년 1월 개봉 예정이라 한다. 

 

 

 

포스터만 봐도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

 

 

개봉 예정 영화라 그런지 한국 포털 사이트에도 짤막한 영화 소개 및 줄거리 등을 올렸는데, 정말 짤막한 그 줄거리는 이렇다.

 

"플로리다 디즈니랜드 건너편 '매직 캐슬' 에 살고 있는 6살 무니와 친구들은 그들만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험 계획을 세운다. 이른바, '플로리다 프로젝트'. 디즈니랜드보다 더 신나고 불꽃놀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컬러풀한 여름 이야기"

 

자 그럼 이제 영화 감상을... 하기 전에 딴지를 한 번 걸어보자. 뭐, 영화가 결코 '디즈니랜드보다 더 신나고 불꽃놀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사실쯤은 쉽고 말랑말랑한 언어로 관객을 끌려는 전략 차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만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험 계획을 세우는 데 그것이 이른바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니. 영화를 다 본다면 여기서 'the project'가 주인공들이 사는 모텔 겸 장기투숙단지를 가리킨다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영화의 제목은 디즈니의 테마파크 및 리조트 건설 계획명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런 뒷 이야기를 역자가 반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이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계획을 세우고 모험을 떠나는 디즈니 애니매이션스러운 서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에서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곁소리는 이만 줄이고 영화 이야기나 하는 걸로.

 

이 영화의 두 중심 축은 6살 무니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무니와 무니의 엄마 헤일리의 이야기이다. 무니와 친구들은 무니의 주도 아래 하루도 쉬지 않고 장난을 치며 활보하는 개구쟁이들인데 영화 전반부 그런 아이들의 대책없는, 그러나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모습은 플로리다의 아름다운 계절과 풍경과 함께 절로 웃음을 짓게 한다. 

 

 

 

무니와 그의 단짝 친구. 저 한 장면에 아이들의 충만한 개구짐이 넘쳐 흐른다. 동시에 참 사랑스럽다. 

 

 

그런 면에서 한국어 줄거리 소개는 이 전반부에만 해당하자면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화는 무니의 엄마 헤일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행객들에게 향수 따위를 팔며 하루하루 벌어 집세만 겨우 내는 삶을 영위한다. 그런 침울한 현실조차 영화 전반부에서는 마냥 해맑은 아이들의 활극과 뒤섞여 힘들지만 평화로운 일상처럼 보이는데, 그런 모습은 영화 중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조금씩 틀어지고 만다. 

 

 

 

모녀라기보단 친구같은 헤일리와 무니

 

 

그 하나의 사건에서 시작해서 헤일리와 무니는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되고 자신들만의 거친 방법으로 회복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다시 신뢰를 얻고 새출발을 하기엔 너무 늦은 걸까. 그러기엔 그들의 방식이 너무 서투르고 투박해보인다. 영화 내내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이 악동같은 두 모녀에 어쩐지 감정이입을 하고, 결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일들을 저질러도 비호감이 아닌 호감으로 느껴지는 반면, 이웃들과 사회와 국가는, 그들에게 그런 감정이입을 할 여유도 이유도 없는 것 같다. 미국인들의 꿈과 희망의 집합체이자 문화적 자긍심의 집결체인 플로리다의 한켠에서, 바로 건너편에서 화려한 디즈니월드의 불꽃놀이가 매일같이 터지는 곳에서, 이런 삶도 펼쳐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곳이 다 그렇듯이.  

 

이 영화가 단순히 쾌활하고 반짝거리는 힐링 영화가 아닌 이유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참혹한 현실에서 아둥바둥하는 하층민들의 비참함을 부각하지도 않는다. 더 나아가 그런 이들의 억울함과 도덕적 선을 강조해 비극성을 높이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우리가 모두 그렇듯 실수투성이고 때로는 악인이 되었다 때로는 선인이 되었다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삶,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펼쳐지고 있을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단편을 보여준다. 그렇게 이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동하게 한다. 

 

 

 

 

까칠하게 굴 때도 있지만 끝까지 헤일리와 무니를 도와주려 애쓴 모텔 관리인 바비

 

 

영화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플로리다의 여름 풍광도 마음을 빼앗는 데 물론 큰 역할을 한다. 심지어 영화의 주인공들과 이웃들이 모여 살아가는 모텔들마저 관광지답게 알록달록하고 참 아름답다. 플로리다에 놀러갔던 기억이 겹치며 그 아름다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났다. '생각해봐, 디즈니월드가 집 앞에 있다니' 란 식으로. 그런데 여행객으로서 나는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뭐, 사실 여행 가서 그 여행지 어딘가에서 신음하며 힘들게 살아갈 원주민들을 걱정하면 그게 더 이상할 지도. 

 

 

 

주인공 무니와 그의 친구들이 사는 '프로젝트'이자 영화의 배경 공간 '퓨처랜드'와 '매직캐슬' 모텔

 

 

 

플로리다 다운 모텔 이름이지만 그곳에서 사는 장기투숙객들에게는 역설적이기만 하다.

 

 

영화의 후반부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이 영화가 끝을 맺는 시퀀스도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그 장면을 촬영한 곳에서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해 무려 '아이폰'으로 촬영했다는 엔딩 시퀀스의 마구 흔들리는 앵글과 낮은 화질은 몰입감을 떨어뜨리 거나 현실 세계로 빠져나오는 기분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사하며 알 수 없는 쾌감을 준 훌륭한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훌륭한 영화였고 누구에게도 주저없이 추천할 수 있을만한 영화였다. 여름에 보면 더 좋았을. 

 

 

 

 

*

 

 




※단편적인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직도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마지막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러닝타임 내내 넋을 놓고 보는 한편 이 미친 영화가 엔딩은 어떻게 장식할 지 기대감과 걱정이 공존하던 중. 



빠바바바 바밤 빠바바바밤- 

펑 펑 펑



모르긴 몰라도 킹스맨을 본 대부분의 사람은 저 두 종류의 효과음을 눈으로만 읽어도 이게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인 지 단박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여기에 그 장면의 움짤을 집어넣지 않는 이유도 그 장면을 머리 속에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젠틀하고 섹시하게 약 빤 영화니, 폭력의 댄디즘이니, 타란티노가 만든 뮤지컬이니, 그런 찬사들을 구태여 다시 늘어놓지 않더라도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왜 훌륭한 영화인가에 대한 분석과 예찬은 이미 차고 넘쳐 여기서 1편의 얘기를 더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킹스맨의 영화적 매력과 완성도는 평론가가 나서서 해설을 해줘야할 만큼의 난해한 예술성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킹스맨은 성공했고 성공한 첩보 액션 영화에 속편 제작은 당연한 수순.





그래서 나왔다. <킹스맨: 골든 서클>이. 그 때 그 사람과 함께. 한국에선 9월 27일 개봉을 앞두고 출연진이 내한을 한 것이 제법 큰 이슈가 되었고 영화에 대한 기대도 상당한 것 같다. 미국에서는 9월 21일 개봉을 했는데 나로서는 드물게도 영화 개봉 당일, 그것도 첫 상영 시간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킹스맨 특유의 액션 시퀀스로 숨가쁘게 내달린다. 지난 1편에서 킹스맨 자리를 두고 다퉜던 찰리(에드워드 홀크로포트)가 어디선가 나타나서는 에그시(태런 에저튼)와 좁은 택시 속 결투를 벌이는 것. 그리고 숨 돌릴 새도 없이 이어지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 새로운 악당 포피(줄리안 무어)는 카리스마 넘치게 등장하더니 예고편에서 드러났듯 킹스맨의 기지를 폭파시켜버린다. 양복점과 본거지 뿐 아니라 영국 전역에 있던 모든 킹스맨 기지와 요원들이 그야말로 전멸한 것이다. 에그시와 멀린(마크 스트롱)만 남겨두고. 애그시만큼 힘들게 킹스맨이 되었던 록시(소피 쿡슨)도 허무하게 안녕. 


분노와 슬픔에 휩싸였으나 빈털털이가 된 애그시와 멀린은 '골든 서클'이라는 의문의 범죄 조직에 대항하기 위해 '최후의 날 규약'에 따라 알 수 없는 단서를 가지고 멀리 미국의 캔터키 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것은 술 장사를 해 킹스맨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부를 축적한 사촌 뻘 첩보기관 '스테이츠맨'. 카우보이를 눌러쓰고 사냥용 총과 채찍을 휘두르며 싸우는 미국스러운(?) 요원들. 그리고 눈 한 쪽 내주고 살아 돌아온 그 때 그 사람. 에그시와 멀린은 해리를 만나 감격한다. 


물론 누가 봐도 코 앞에서 쏜 총에 맞아 쓰러졌던 해리가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해 납득할 만한 뒷이야기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세 사람의 진정한 재회는 후로 미뤄지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뭉친 세 사람은 스테이츠맨과 협력하여 인류를 인질로 삼고 사업을 벌이는 악당 포피와 그녀의 조직 골든서클을 무너뜨리기 위한 작전을 펼치게 된다. 


이들과 협력하는 스테이츠맨 요원의 얘기를 안 할 수는 없는데, 나름대로 비중이 큰 조연이기도 하거니와 반가운 얼굴이기 때문이다. 요원 위스키(페드로 파스칼) 말이다. 왕좌의 게임을 본 사람이라면 어, 저 사람이, 할. 바로 도른의 왕자 오베른 마르텔로 분했던 배우이다. 이번 킹스맨에서의 연기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할 수 없지만 왕좌의 게임에서의 강렬한 이미지 때문인 지 괜시리 보는 내내 짠한 마음이 들고 또 까불다가 눈이 뽑힐 것 같아 불안하고 그랬더랬다. 





각설하고 결론적으로 개인적인 감상평을 말하자면 여전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보기 전부터 혹시나 가졌던 우려는 역시나였다. 참신하고 파격적이면서도 탄탄한 전개를 자랑하는 영화의 속편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그랬다. 


여전한 매력과 장점도 분명 있다. 킹스맨 특유의 경쾌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액션의 향연, 남자들의 로망을 원없이 충족시켜주는 세련되고도 화려한 첩보 기술과 장비의 향연, 소위 '병맛'이라 부르는 선정성과 폭력성을 별 거 아니라는 듯 가벼운 터치와 유머로 담아내는 대담성까지.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캐릭터와 혼열일체가 된 주연 배우 태런 에저튼과 콜린 퍼스의 활약도 여전하다. 


다만, 에그시와 해리가 1편만큼이나 매력적이었는 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에그시의 캐릭터가 1편에선 스토리 상 성장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입체적으로 다가왔던 반면 2편에서는 노련한 요원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다소 평평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해리의 경우는 좀 더 아쉬움이 있었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구구절절 말할 순 없지만, 마치 1편에서 덜컥 죽였다가 팬들의 엄청난 항의에 놀라 해리를 다시 살려낸 것만 같은(사실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감독의 마지못함이 해리라는 캐릭터에 묻어 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싸이코패스 악당 포피 역을 맡은 줄리안 무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는 다 했다. 할 수 있는 바가 별로 없었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확실히 줄리안 무어의 얼굴에도 묘한 섬뜩함과 광기가 있어서 악한을 연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내 개인적인 취향을 묻는다면 영화 <스틸 앨리스> 속 줄리안 무어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건 사실이다. 


그 외에 스테이츠맨의 요원으로 새롭게 얼굴을 알린 이들도 미약하나마 매력 발산을 했고, 미국의 첩보기관 스테이츠맨이라는 아이디어도 그 자체는 어느 정도의 신선한 매력 요소가 되었다. 이미 제작이 공언된 3편에서 혹여 킹스맨, 스테이츠맨을 이어 차이나맨이 나오진 않았으면. 





킹스맨 식의 적시 적소(?)에 터지는 노래와 음악들, 그리고 그 중심축이 되는 엘튼 존도 볼거리, 들을거리 면에서 즐거움을 주었다. 놀랍게도 <킹스맨: 골든 서클>의 웃음 포인트 중 꽤 많은 부분이 엘튼 존의 분량에서 나온다는 사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너무도 쉽고 엉성하게 엮은 영화의 이야기 얼개 때문이다. 사실상 면면만 달라졌을 뿐, 삐뚤어진 도덕관과 비범한 사업 수완으로 무장한 사업가가 전 세계 인류의 정신을 손아귀에 넣고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는 줄거리는 전편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전편에서도 호불호가 갈렸던 선정성과 폭력성은 수위를 더해 중간의 성적인 묘사나 문자 그대로 사람을 갈아버리는 장면 등 보는 사람에 따라 (전편의 수위를 받아들였던 관객이라도) 거부감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그런 점은 이 영화의 골수팬이라면 오히려 환영할 일일 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내가 느낀 이 영화의 치명적 약점은 악당 포피의 무기력함이다. 위에서도 말했든 줄리안 무어로선 본인의 역할을 했지만, 포피라는 캐릭터는 영화에 긴장감을 주고 주인공들을 위협하기엔 한참 모자라다는 느낌이었다. 악당이 위협적이지 못하니 자연스레 이야기도 느슨해질 수 밖에.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내용과 성격은 물론, 규모와 제작비 면에서도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아니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킹스맨: 골든서클>은 블록버스터가 되어 돌아왔다.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들이고도 빚어냈던 세련되고 감각적인 장면과 연출은 전편의 후광으로 얻어낸 막대한 제작비를 등에 업고 더없이 화려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부정적인 요소들, 소재와 배경의 들러리화와 볼거리의 남용, 그것에 압도된 서사, 개연성의 상실 등까지 가져온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스맨은 여전히 그 매력이 살아있는 콘텐츠인 것은 분명하다. 조금만 더 그 콘텐츠를 잘 가꿔나간다면 본드 시리즈가 그랬듯 오래도록 장수하는 첩보 액션 시리즈의 대명사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주제 넘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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