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에 온 지 벌써 혹은 이제 겨우 어느 시간이 흘렀다. 처음 맞는 한 계절도 끝나가는 듯 싶었더니 섣부른 짐작을 비웃듯 다시 무덥다. 이국의 늦더위는 고국의 늦더위와 짝을 이뤄 한국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안 들게 한다. 이국의 여름은 고국의 겨울보다 더 친근하고 이국의 도시며 한적한 마을도, 사람까지도 고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은 감당할 수 있을만큼 고되고 일상은 얼굴 붉히지 않을만큼 익숙하다.
사람은 적응한다.
그래도 이따금씩 '이국적인'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별다른 생각없이 남의 말로 듣고 읽고 말하고 쓰다 느닷없이 그런 말을 듣고 읽고 말하고 쓰는 내 자신이 이국적으로 느껴질 때가. 자연스럽게 이국적이려 애쓰다 지칠 때가. 그럴 때 순전히 나를 위한 번역을 하기도 한다.
화자를 떠난 지 한참인 말을 입 안에 넣고 이런 말로, 저런 말로 굴려보다 적당한 한국어를 찾으면 안도하곤 한다.
글을 쓰는 일은 고통스럽다. 아무도 원치 않을 자기 의심을 굳이 스스로 부추기는 일이며 눈치껏 모른 체할 수도 있었을 자신의 무지함과 무능력함을 굳이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카프카조차 그랬으니 하물며.
처음 내 글을 써 모으자는 생각을 한 이후, 고통을 못 이겨 글쓰기를 멈추고 그 고통스런 수고로움이 그리울 때 다시 글을 썼다. 그러는 동안에 이상한 고집과 젊은 날의 허영심으로 내 글쓰기는 연필과 종이가 있어야만 시작되었고 연필을 내려놓으며 멈췄다. 그 중엔 낯뜨겁게도 분에 겨워 내 손으로 찢어버린 노트가 한 권, 내 감정을 강요하며 애인에게 바친 노트가 한 권. 그리고 남은 노트들. 연필을 내려놓고 쳐박아두었다가 어느 바람에 다시 애타게 찾노라면 고맙게도 어딘가엔 항상 있던.
마지막 노트를 덮고 꽤 오래 글쓰기를 멈췄다가 다시 글을 쓰려는데, 또 어떤 바람이 분 걸까.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에서일 수도 있겠고 갑자기 내 글을 세상에 내보일 근거없는 용기가 들어서일 수도 있겠다. 으레 하던 어떤 노트를 살까, 하는 고민이 아닌 어떤 블로그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마치 오래 전부터 그러고 싶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