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이 얼마나 신비롭고도 중요한 일인지 스스로 감탄하며 다른 사람들, 

특히 내가 사랑하고 나를 인정해줬으면 싶은 사람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고자 무던히 애썼던 때가 있다.

이를테면,

'생각을 해봐. 모양도 순서도 소리도 완전히 다른 어떤 말과 글을 내가 이해한다는 거. 

[Winter]와 [겨울]이라는 전혀 다른 단어를 듣고 같은 장면을 떠올린다는 거. 엄청난 일이야.'

혹은 좀 더 막무가내로,

'아 글쎄, 번역이 없었으면 기독교도 셰익스피어도 현대 의학도 뭐도 없었을 거라니까.'

그러면 예의 그 장난끼 어린 음성으로 너는,

'번역이 중요한 건 맞는데 그것도 다 데이터 싸움이야. 단어와 문장과 문법과 맥락의 데이터. 맥락까지도라니까.’

그렇지만 나를 너무나 잘 아는 너는 덧붙여,

'물론 네 말대로 언어의 맥락은 계속 창조되니까 인간의 번역도 완벽히 대체될 수 없는 창조 작업이지.'

그러면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저 웃고 만다. 오래 전 일도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순진했다. 지금도 사실 그렇다. 

여전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긴다는 것은 내게 축복이자 경이로움이다. 내 소소한 자긍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내가 사랑하는 것이 꼭 최고이지 않아도 좋다는 걸 안다.

한글날, 어김없이 컴퓨터 폴더 깊숙한 어딘가에서 나와 날짜만 바뀐 채 쏟아지는 한글의 우수성을 역설하는 기사들을 보며 

쯧, 혀를 차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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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나라에 온 지 벌써 혹은 이제 겨우 어느 시간이 흘렀다. 처음 맞는 한 계절도 끝나가는 듯 싶었더니 섣부른 짐작을 비웃듯 다시 무덥다. 이국의 늦더위는 고국의 늦더위와 짝을 이뤄 한국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안 들게 한다. 이국의 여름은 고국의 겨울보다 더 친근하고 이국의 도시며 한적한 마을도, 사람까지도 고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은 감당할 수 있을만큼 고되고 일상은 얼굴 붉히지 않을만큼 익숙하다.


사람은 적응한다.


그래도 이따금씩 '이국적인'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별다른 생각없이 남의 말로 듣고 읽고 말하고 쓰다 느닷없이 그런 말을 듣고 읽고 말하고 쓰는 내 자신이 이국적으로 느껴질 때가. 자연스럽게 이국적이려 애쓰다 지칠 때가. 그럴 때 순전히 나를 위한 번역을 하기도 한다.

화자를 떠난 지 한참인 말을 입 안에 넣고 이런 말로, 저런 말로 굴려보다 적당한 한국어를 찾으면 안도하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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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글을 쓸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글을 쓴다는 것에 얼마나 많은 의문을 품었던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무능력하고 무지한 사람이다.

강제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면 -자신의 노력은 전혀 없고

강요도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개집 안에 웅크리고 앉아

누가 먹을 것을 주면 껑충 뛰어 나오고 다 먹은 후엔

다시 뛰어 들어가기만 했을 것이다."


카프카의 일기, 1913년 11월 18일 중에





을 쓰는 일은 고통스럽다. 아무도 원치 않을 자기 의심을 굳이 스스로 부추기는 일이며 눈치껏 모른 체할 수도 있었을 자신의 무지함과 무능력함을 굳이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카프카조차 그랬으니 하물며. 


처음 내 글을 써 모으자는 생각을 한 이후, 고통을 못 이겨 글쓰기를 멈추고 그 고통스런 수고로움이 그리울 때 다시 글을 썼다. 그러는 동안에 이상한 고집과 젊은 날의 허영심으로 내 글쓰기는 연필과 종이가 있어야만 시작되었고 연필을 내려놓으며 멈췄다. 그 중엔 낯뜨겁게도 분에 겨워 내 손으로 찢어버린 노트가 한 권, 내 감정을 강요하며 애인에게 바친 노트가 한 권. 그리고 남은 노트들. 연필을 내려놓고 쳐박아두었다가 어느 바람에 다시 애타게 찾노라면 고맙게도 어딘가엔 항상 있던. 





마지막 노트를 덮고 꽤 오래 글쓰기를 멈췄다가 다시 글을 쓰려는데, 또 어떤 바람이 분 걸까.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에서일 수도 있겠고 갑자기 내 글을 세상에 내보일 근거없는 용기가 들어서일 수도 있겠다. 으레 하던 어떤 노트를 살까, 하는 고민이 아닌 어떤 블로그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마치 오래 전부터 그러고 싶었던 것처럼.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다시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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