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받고 집에 돌아온 날 밤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시간은 갔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지금까지만 놓고 보자면 업 앤 다운은 있지만 잘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

간략하게 그동안 회복 일지를 정리해보자면.

2주차


수술하고 2주 정도 지나서 집도의랑 만나 수술 부위가 잘 아물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다리의 방사통/저림과 풋드랍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체크했다.

사실 집도의도 근력이 돌아오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다고 했는데 의외로 제일 먼저 회복된 건 발목 및 발가락 근력이었다. 수술 1주차 때까지만 해도 통증과 저림이 꽤 심해서 근력이 돌아왔는지 잘 못느껴졌고, 괜히 좀 쫄려서 혼자 근력 테스트를 해보지 못했는데 막상 해보니 거의 80%는 회복된 것 같다. 뒷꿈치로 걷는 것도 약간 어렵지만 가능했고 발가락들도 힘이 잘 들어갔다.

다만 2주차에도 다리 저림은 꽤 있는 채로 눈에 띄게 좋아진 건 없었다. 의사는 시간이 걸리니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수술 부위의 경우 상처는 잘 아물고 있었지만 더마본드(수술용 글루)가 많이 안 떨어지고 남아있었는데 그것도 역시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떨어질 거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3주차


3주차에 접어드니 수술부위는 물론 다리에도 통증은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없어졌다. 근력은 확실히 100% 회복되었다고는 힘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결국 제일 신경 쓰이는 건 다리 저림. 내가 수술을 받은 부위인 L4-5와 L5-S1 뒤의 신경과 이어지는 부분이 아래 그림의 정강이 바깥쪽 부위부터 시작해서 발등 발가락까지인데, 정확히 그 부분이 저리고 만지면 감각이 둔한 상태였다.

출처: deep peroneal nerve – Liberal Dictionary (tekportal.net)


그래도 다리 전체가 저리던 초반보단 훨씬 살만해졌지만, 원래 살만해지면 또 그 상태에서의 불편과 힘듦에 불만을 품기 마련. 수술 전에 적어도 3개월은 걸린다고 생각하자던 마음가짐은 어디로 갔는지. 어쨌든 상태가 좋아졌으니 하루에 시간을 정해 열심히 걷고 조금씩 걷는 시간을 늘리는 것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3주차가 끝날 쯤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서 하루 만보씩은 걸었다.

4주차


4주차도 3주차와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신경저림과 감각 둔한 건 거의 대동소이했고, 허리나 다리나 통증은 없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수술 부위가 간지러워진 것. 처음엔 심하지 않아서 무시했는데 점점 간지러움도 심해지고 두드러기처럼 수술 부위 주변으로 빨간 발진이 일어났다. 의사 상담 결과 아마도 더마본드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 거라고. 그러게 병원에서 진작 좀 떼어줬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쨌든 이미 자연적으로 글루 자체는 거의 떨어진 상태고 감염된 것도 아니니 연고만 열심히 바르면 없어질 거란다.

근력은 100% 가까이 돌아온 것 같다. 물론 발 전체가 아직도 저리고 해서 간단한 발 근력 운동을 하면 저릿하지만 근력 자체는 문제가 없다. 만오천보 정도씩 걷는 루틴에 추가로 아주 간단한 수준의 스트레칭 및 코어 운동도 하는데 다음주부터 물리치료를 시작하면 좀 더 제대로 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이제 일도 다시 시작하는데 일을 하면 잡생각할 시간도 줄어들테고 시간이 좀 빨리 가겠지 싶어 기대 아닌 기대를 하고 있다.


게으른 내가 더 이상 회복기를 기록하진 않을 것 같지만, 완쾌(라는 표현은 좀 웃기지만)하는 날에는 기쁨에 겨워 뭐라 한마디라도 남기지 않을까. 제발.



*




10월 중순쯤, 타호로 캠핑 트립을 갔다가 사단이 났다. 그전에도 편치 않았던 허리였지만 애써 무시하고 놀러다니고 무리하며 점점 불편함을 느꼈는데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재채기 한 번 잘못했다가 디스크가 터진 것. 그 날의 드라마는 TMI이니 스킵하기로 하고, 여하튼 그 이후로 진통제와 물리치료를 병행하며 보존치료를 해왔다.

처음에는 이부프로펜(600mg/일)을 먹었지만 효과가 떨어지는 듯 하여 재처방을 받은 NSAID는 멜록시캄(15mg/일). 물리치료는 사실 좀 늦게 시작했다. 중간에 한국을 다녀오는 무리수를 감행하느라. 지금 와서 생각해도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어찌됐든 그럼에도 허리디스크가 대개 그렇듯 몸은 나아지는 듯 싶었다. 사실 12월 초 한국에서 돌아온 후 물리치료를 시작했을 시점에는 허리 통증도 별로 없었고 오른쪽 엉치와 옆구리가 조금 아픈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12월 초-중순, 본격적으로 오른쪽 다리로 신경통이 뻗어나가며 통증과 저림이 심해져갔다. 스탠포드 병원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찾았지만 MRI는 찍을 필요 없다고 하며 진통제 먹고 물리치료 잘 받으라고 했다. (MRI도, 내시경도 미국은 참 어지간히도 안찍어준다.) 그렇게 몸을 사리며 일주일에 한번씩 물리치료를 받고 집에서는 물리치료실서 배운 운동과 걷기 운동을 하며 버텼다.


물리치료 하니 생각난 잡설이지만, 몇 년 전 한국에서 일하다 첫 디스크 탈출로 고생했던 시절 강남 회사 근처의 정형외과에서 받은 치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디스크 진단 후 한 달 정도를 물리치료(를 빙자한 마사지)와 원장이 직접 해주는 도수치료나 해주며 시간 끌다 결국 통증이 더 심해져 더 큰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샷을 맞고 운동하며 나아졌더랬다. 보험으로 비용이 상당히 커버되니 좋다고 받은 나도 나지만, 우리나라 디스크 치료에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 수술 권유 남발은 말할 것도 없고.


무튼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12월 말, 다리의 방사통과 저림 등은 줄었는데 평생 처음 겪는 증상이 시작됐다. 다리 힘빠짐 또는 풋드랍(foot drop). 시작은 경미한 수준의 증상이었다. 뒷꿈치로 걷는 게 조금 어려운 정도.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았고 그외 다른 근력 테스트를 해도 왼다리보다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물리치료사에게 물어봤더니, 다리 힘빠짐 자체는 자주 나타나는 허리디스크 증상 중 하나이고 대소변 장애가 동반되거나 힘빠짐 정도가 심각한 수준도 아니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해줬다.

그러기를 다시 얼마 후. 해가 바뀌고 1월 초가 되니 힘빠짐이 더 심해졌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스탠포드의 담당의에게 연락했더니 드디어 MRI 오더를 내주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운좋게도 전화한 당일 바로 MRI를 바로 찍고 의사도 이틀 후 바로 만났다(그야말로 미국 병원치곤 믿을 수 없는 속도). 근력 테스트 및 MRI 검사 결과, 1. L4-5와 L5-S1 두 군데 디스크 돌출이 있다는 것, 2. 풋드랍이 분명하게 있고 디스크 터진 후 시간이 꽤 지났으니 수술도 고려할 수 있으나 힘빠짐이 심하진 않으니 기다려 보자는 것, 3. 통증이 심하지 않으니 스테로이드 샷(신경차단술 등 시술)은 의미없다는 것.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나아지길 바라며.

내 디스크 돌출 부위


그러나 1월 초-중순이 지나가며 힘빠짐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심해졌다. 가장 먼저 오른발 엄지발가락의 힘이 빠졌고 다른 발가락이 뒤이었다. 발목 운동은 비교적 잘 되었지만 왼다리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거기다 조금만 걷거나 잠시 서있어도 발이 심하게 저리고 얼얼해졌다. 하루에도 몇번씩 고민을 했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수술의 리퍼럴을 받아 수술의와 만났다. 수술의는 자연 회복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네가 결정할 문제다, 라면서도 힘빠짐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건 좋지 않은 사인이니 수술을 권했다. 솔직히 두려웠고 많이 고민했다. 여기 저기 나름의 조사와 조언을 구하고 내린 결론은 결국 수술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집 근처에 믿을 만한 스탠포드 병원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미국 병원치고 드물게 빨리빨리 순조롭게 검사 및 일정이 진행됐다는 것. 그 과정에서 만난 간호사들과 의사들도 모두 프로페셔널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쓸데없는 걱정이나 인터넷 서치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미 충분히 informed decision을 내렸다고 믿었으니 남은 건 수술 잘 받고 재활 잘 하는 것 뿐. 1월 중순, 수술을 결정하고 난 후 수술받기 직전까지도 힘빠짐은 점점 심해졌다. 엄지 발가락은 물론 다른 발가락들에도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발목 운동도 확실히 더 힘들어진 수준. 발바닥의 통증과 저림도 악화된 건 마찬가지.

그리고 1월 25일, microdiscectomy (미세현미경 디스크 제거술) 수술을 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