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day

한글날

너굴아앙 2017. 10. 9. 01:45

​역이 얼마나 신비롭고도 중요한 일인지 스스로 감탄하며 다른 사람들, 

특히 내가 사랑하고 나를 인정해줬으면 싶은 사람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고자 무던히 애썼던 때가 있다.

이를테면,

'생각을 해봐. 모양도 순서도 소리도 완전히 다른 어떤 말과 글을 내가 이해한다는 거. 

[Winter]와 [겨울]이라는 전혀 다른 단어를 듣고 같은 장면을 떠올린다는 거. 엄청난 일이야.'

혹은 좀 더 막무가내로,

'아 글쎄, 번역이 없었으면 기독교도 셰익스피어도 현대 의학도 뭐도 없었을 거라니까.'

그러면 예의 그 장난끼 어린 음성으로 너는,

'번역이 중요한 건 맞는데 그것도 다 데이터 싸움이야. 단어와 문장과 문법과 맥락의 데이터. 맥락까지도라니까.’

그렇지만 나를 너무나 잘 아는 너는 덧붙여,

'물론 네 말대로 언어의 맥락은 계속 창조되니까 인간의 번역도 완벽히 대체될 수 없는 창조 작업이지.'

그러면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저 웃고 만다. 오래 전 일도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순진했다. 지금도 사실 그렇다. 

여전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긴다는 것은 내게 축복이자 경이로움이다. 내 소소한 자긍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내가 사랑하는 것이 꼭 최고이지 않아도 좋다는 걸 안다.

한글날, 어김없이 컴퓨터 폴더 깊숙한 어딘가에서 나와 날짜만 바뀐 채 쏟아지는 한글의 우수성을 역설하는 기사들을 보며 

쯧, 혀를 차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