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day/Cats

민용과 오군 1. (feat.어흥)

너굴아앙 2017. 9. 22. 01:08

러니까 시작은 이랬다.


나는 겨울방학을 맞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애인의 집으로 떠나 두어달 머물렀다. 그리고 그 이웃집엔 

같은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집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당시 나이 일곱 살, 사람으로 치자면 중년을 넘은 아주머니지만 늠름하게도 이름은 어흥이인.





이 아주머니가 내 인생에, 우리 인생에 그토록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줄이야. 




그 친구가 집을 비우며 어흥이를 우리가 며칠간 돌봐주게 되었는데, 그 며칠은 우리가 이 영롱한 눈빛의 생명체에 

완전히 홀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흔히 반려동물이 있건 없건 사람을 고양이 형이나 개 형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우리는 그 며칠 만에 우리의 (집사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한 것이다. 속된 말로 입덕. 


그리고 어흥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그 전부터 우린 고양이를 입양하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고 

그러던 찰나 어흥이를 맡게 되어 한 번 직접 키워보고 결정해보자, 하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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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이 우리에게 왔다. 지역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만난 방년 1세 소년.


일단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마음 먹은 후 우리는 여러 유기동물 보호소를 찾아갔다. 한국과 달리 반려동물 문화가 

깊숙하게 뿌리 내린 미국은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대형 보호소가 곳곳에 있다. 그 중 시카고에서 대표적인 곳이 

PAWS(동물의 발), 그리고 Anti-Cruelty Society(동물학대 없는 사회)이다. 

혹시 어떤 곳인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링크.


 PAWS

http://www.pawschicago.org/


Anti-Cruelty Society

http://anticruelty.org/


사이트를 들어가보면 알 수 있지만 생각보다 거대한 시설에 수많은 고양이와 개, 혹은 다른 동물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 속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입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 우리가 처음 찾은 곳은 PAWSChicago. 

좀 더 재정적 여유가 있어 보이는 시설이나 백인 위주의 봉사자들까지 더 "힙"해보인다는 속된 이유 때문이었다. 





살아있다는 건 멋진 일이야!






근사한 내부와 여유로운 사람들 






역시나 근사한 고양이 놀이터

지정된 시간 동안 저렇게 풀어두고 보통 각자 케이지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퇴짜를 맞았다. 미국 영주권/시민권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 미국에서 계속 살 지 안 살 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환경에 입양을 보낼 수 없다는 단호한 거절에 우리는 이해는 하면서도 실망감을 안은 채 그곳을 나섰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어차피 미국에서 졸업 후 계속 일을 할 생각이었는데.

이번엔 조금 요령을 부려보자 하는 마음으로 찾은 보호소가 Anti-Cruelty Society.





이곳도 규모나 건물 외양은 PAWS 못지 않은 대형 보호소이다





확실히 PAWS에 비하면 내부 시설이나 유기동물 케이지 청결도 등은 부족하다

그럼에도 준수한 수준




우리가 요령껏 비자 문제를 눙쳤던 덕분인 지, 아니면 이곳이 덜 깐깐해서였는 지, 우리는 서류 심사(?)를 무사 통과했다. 

그리고 둘러본 많은 고양이들. 생후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깽이들부터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묘들까지.


아직 사연이랄 게 없어 뵈는 천진한 호기심의 눈, 

무슨 사연이 있는 지 사람만 다가가면 구석에 숨어 반짝이는 눈,

사연이 어떻든 고양이다운 나른함에 젖어 반쯤 감긴 눈,

언젠가부터 사연을 사연이 아닌 세월로 감당했을 지친 눈.


인간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그 눈빛들을 그토록 다양하게 그토록 오래 보는 것은 뜻밖에도 슬픈 일이었다.

나는 그날을 그렇게 기억한다. 고양이를 입양해 설레고 기뻤던 감정 어딘가엔

분명 그 눈빛들을 향한 이상한 슬픔이 묻어 있었다. 


정작 입양할 고양이를 결정하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어리거나 너무 나이 든 고양이를 피하는 편의성과 이왕 데려올 거 예쁘고 귀여운 미묘를 찾자는 욕심으로.

그럼에도 그 중 하필 이 녀석을 데려온 것은 그저 마음이 더 쓰여서.

활기왕성할 나이답게 조심스럽지만 적극적인 눈빛으로

우릴 똑바로 쳐다보던 그 모습 때문에.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래서 이 친구가 우리에게 온 것이다. 민용이가.

2016년이 막 시작했던 어느 날에.

민용이라는 이름의 기원에는 두 가지 유력한 설이 있다.


첫 째, 둘 다 포켓몬을 좋아하는 우리가 '미뇽'(미뇽-신뇽-망나뇽의 그 미뇽)의 이름으로 

신묘한 한글의 두음법칙과 역유음화 과정을 거친 후 '민용'이라 불렀다는 설.

둘 째, 우리 둘의 집안 돌림자를 한 자 씩 따와서 민+용, 그래서 '민용'이 되었다는 설.


이 아무말 대잔치 같은 썰 중에 진실이 있다는 것은 진실.





아직 집사의 분수를 모르던 즐거운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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